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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ang Jarie(손 동굴)를 탐험하고 있는 고고학자들과 가이드. 그들 중 한 명이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손 스텐실 그림의 근원을 발견했다. |
글 Graham Chandler
사진/영상 Meridith Kohut
가방을 앞으로 밀어내고 손전등에 의지하여 푹푹 찌는 습한 공기 속에서 낮게 매달려 있는 종유석에 부딪히지나 않을까 조심하며 기어간다. 낮은 통로를 지나자 곁방으로 내려가는 대나무 사다리가 나온다. 그곳에서는 어서 오라고 손짓하는 반짝이는 주광이 비춰온다. 환한 빛에 눈을 찡그려본다. 자연적으로 발생한 거대한 돔형 구멍을 통해 수백 미터 아래에 위압적인 장관을 뿜어내는 푸릇푸릇한 논이 보인다. 이곳이 BULU SIPONG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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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amcoWorld를 10개의 Maros-Pangkep 동굴로 이끌고 간, 4일간의 탐험 멤버들이 대나무 사다리를 타고 Bulu Sipong이라고 불리는 동굴로 내려간다. |
Bulu Sipong은 인도네시아의 수도 마카사르 북쪽으로 한 시간 정도 차를 타고 가면 있는 남부 술라웨시의 수백 개의 석회석 동굴 중 하나이다.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동굴 벽화 중에서 최근 새롭게 주목을 받고 있는 중이다. 특별히 동굴 벽에 손을 올리고 그 위에 색소를 뿌려서 만든 불그무레한 손 스텐실은 최근에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손 스텐실 그림으로 지정됐다. 최소 39,900년 전에 그려진 것이다. 이러한 연대로 인해 마로스 빵껩(Maros-Pangkep)이라고 불리는 남부 술라웨시의 이 지역은 인간 인식과 창조적 표현의 기원과 진화를 추적하는 새로운 세계 지도에 오르게 되었다. 이런 종류의 예술이 남서부 유럽에서 발생하여 동쪽으로 퍼져 남부 아시아와 동남 아시아로 전해졌다가 초기 현대 이민자들의 이동과 함께 호주로 전해졌다는 오래된 이론을 흔들고 있는 것은 바로 연대이다. 13,000킬로미터나 떨어진 유럽의 벽화만큼이나 오래된 그 그림을 통해 서양에서 동양에 이르는 세계 전체에서 인간은 선사 시대 속 비슷한 시대에 고급 예술 형식을 만들어내고 있었다는 사실을 처음으로 확인하게 되었다.
우리는 이러한 동굴들에 대해서 연구한 인도네이사 고고학자들과 얘기를 나누고 최근의 초기 인류 역사에 대한 생각의 확장 뒤에 있는 예술을 우리 눈으로 직접 보기 위해 Maros-Pangkep으로 갔다. 탐험을 시작한 때는 2월 우기였지만 다행히도 Muhammad Ramli와 Mubarak Andi Pampang와 술라웨시 최고의 "동굴 갤러리" 10 곳을 탐험했던 그 4일간은 하늘이 푸르렀다.
최소 1950년 대부터 현지인들과 고고학자들은 이 동굴들에 벽화가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고 아마도 근처에 살았던 사람들은 더 일찍 알았을 것이다. 이곳의 선조들은 여가를 즐기거나 약초를 구하기 위해 수백년간 이 언덕들을 구석구석 뒤졌었다. 최근까지 세계의 고고학자들은 Maros-Pangkep의 벽화들이 열대 지방의 카르스트 지형(석회암 지형)에서는 일반적인 빠른 침식 때문에 10,000년이 넘을 수 없다고 가정했다. 하지만 어느 시점에서 마카사르의 인도네시아의 고고학자들은 이 벽화들 중 상당수가 그 보다 더 오래 되었고 이 지역에 현대 인류가 등장했던 40,000년에서 50,000년 전보다 그리 늦지 않은 시기에 그려졌다는 강한 직감을 갖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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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카사르 문화유산 보존 센터에서 일하고 있는 고고학자, Muhammad Ramli와 Mubarak Andi Pampang가 Leang-Leang 선사시대 공원 연구를 위해 베이스캠프 역할을 하고 있는 곳에 도착하고 있다. 아래 그림에 있는 표지판이 동굴로 가는 방향을 가리키고 있다. Leang은 '구멍' 혹은 '동굴'을 의미한다. |
"우리는 발굴한 증거를 가지고 하나의 가정을 세웠어요. 뼈, 껍데기 침전물, 황토와 같은 증거들과 비교해보았죠'"라고 마카사르 고고학 연구소의 연구원인 Budianto Hakim가 말한다. "탄소 연대측정법에 따라 30,00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갔습니다." (실제로 나중에 방문했던 동굴에서는 35,000년 전까지 거슬러 올라갔다.) Hakim도 그랬듯이 그렇다고 해서 그 벽화들이 근처에 있던 예술품들과 같은 시대 것이라고는 곧바로 추론할 수는 없는 일이다. 누군가 그 옆에 예술품을 남겨두고 간지 1,000년 후에(혹은 1,000년 전에) 벽화를 만들었을 수도 있는 일이다.
종교와 예술의 기원을 연구하기 위해서는 인류 초기의 예술, 특히 조형미술의 연대를 측정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 다음에는 인류의 정신 속에 있는 창조성의 기원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가장 단순한 조형미술에서조차도 인도네시아 자바에서 발견된 500,000년 전의 껍질에 새겨진 십자 방격 라인과는 반대되는 구상주의적인 이미지를 만들어낼 수 있는 인식 능력을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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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mpang(위)은 센터에서는 암면미술을 새롭게 발견해서 기뻐하고 있으며 현재 조사한 90개의 암면미술 작품에 추가한다고 말했다. "우리는 발견자를 완전히 신뢰하며 해마다 그들에게 포상을 하며 종종 일거리도 제공해줍니다"라고 그는 설명한다. Ramli(아래)는 1980년대 이후로 동굴과 예술에 대한 연구를 하고 있다. |
고고학자들은 바로 조형미술이 시작된 곳과 시작된 시기에 대해 지속적인 관심을 갖게 된다. 호모 사피엔스라고 하는 현대 인류는 200,000년 전에 동아프리카에서 진화했으며 현존하는 최고의 증거를 통해 그들 중 일부가 아프리카를 떠나 레반트를 통해 아라비아 반도를 가로질러 이주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그곳에서부터 일부는 유럽으로 이주했으며, 일부는 동양으로 이주해서 남아시아와 동남아시아를 거쳐 50,000년 전 쯤에는 꽤 빠르게 이동하여 호주에 이르렀다. 조형미술의 기원에 대한 연구는 이러한 거대한 이동 경로를 따라 조형미술이 나타나는 곳에서 중요하다.
19세기 후반에 형성된 이론들은 예술의 기원이 남서 유럽과 양식 개념의 동양으로의 점차적인 보급에 있다는 점을 가리켰다. 이 부분에 대한 근거는 현재까지 가장 오래된 것으로 알려진 예술이 발견된 곳에 있다. 결과적으로 수십 년간 조형미술의 기원에 대해서는 유럽 중심적인 관점이 지배적이었다. 현재까지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비조형미술 동굴 벽화로 알려진 것은 스페인 남부 엘 카스티요에서 발견한 40,800년 전의 빨간 원반이다. 반면 가장 오래된 조형 암면미술은 프랑스의 유명한 쇼베 동굴에 있는 코뿔소 그림으로 탄소 측정법에 따르면 35,300년에서 38,827년 전의 그림이다. 초기 인류 이동의 동쪽 끝, 호주의 가장 오래된 암면미술은 만들어진지 30,000년 정도 되었다. 비록 그 작품에 사용된 색소나 적철석 '크레용'은 36,000년에서 74,000년 사이 어느 시점에 해당하는 침전물 속에서 발견되었지만 말이다.
이 모든 것은 이러한 연구들에서 공유되는 실망스러운 양면을 지적한다. 정확한 연대 측정이 중요하지만 암면미술은 연대를 추적하는 것이 어렵다고 악명이 높다. 탄소 14 연대측정법은 쇼베 동굴 코뿔소 그림의 연대를 측정할 때도 사용되었지만 일반적으로 유용하지 않은 방법이며, 탄소 14 연대측정법은 유기 물질(그래서 날짜를 추적할 수 있는 물질)을 결정할 때 벽화에 포함된 화학적 성분의 정확한 분할에 따라 결정되기 때문에 종종 논쟁거리가 된다. 최근에는 우라늄 토륨 연대측정법이라는 방법으로 동굴 벽화를 측정하는데 이 방법은 가장 오래된 동굴 벽화인 엘 카스티요의 빨간 원반의 연대를 결정하는 데 사용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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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 위: 새끼 손가락이 있는 부분에서 직사각형 모양으로 샘플을 채취해 우라늄 토늄 연대측정법을 사용하여 최소 39,900년의 연대가 나왔던 것은 Leang Timpu-seng에 있는 이 손 스텐실이다. Pampang이 예술가들이 했던 방법을 따라하여 또 다른 동굴 벽에 손을 대어보고 있다아래. 동굴에 있는 모양 중에서는 손 스텐실이 가장 일반적이었다. 세계적 동굴 벽화 전문가인 David Lewis-Williams는 이런 관습은 "단순히 손자국 그림을 남기려는 것(내가 여기 있다는)이 아니라 영적 세계나 그 능력과 접촉하기 위해서이다"라고 주장한다. |
하지만 우라늄 토륨은 그림의 연대를 직접 측정하지는 않는다. 대신에 방해석 부착물(그림이 있는 곳)에서 채취한 샘플의 연대를 그림 층 밑에서 또 그 위에서 측정한다. 그림 밑에 있는 방해석은 최대 연대를 나타내며 그림 위에 있는 부착물은 최소 연대를 나타낸다.
우라늄 토륨 연대 측정법은 자체 결함을 함유하고 있다. 프랑스 과학자 Georges Sauvet와 그의 동료들이 2015년에 잡지에 발행한 국제제4기학에서는 결과를 선별, 조작하여 천연 우라늄의 상당량이 감소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우라늄 토륨 측정법을 선사시대 암면미술에 적용하는 것은 여전히 실험적인 일이다"라고 그들은 요약했다. "기술적 진보와 오류의 원인에 대한 근본적 연구가 필요합니다."
그 방법을 썼던 사람들은 방화석 샘플을 충분한 채취하면 이러한 위험을 최소화할 수 있다고 대답한다. "우리는 이러한 위험을 통제하기 위해서 층위학적 순차로 층의 연대를 측정하고 있습니다"라고 엘 카스티요 연대 측정에 참여했던 사우샘프턴 대학교의 고고학과 부교수 Alistair Pike는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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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ainey Woodham |
호주 골드코스에 있는 그리피스 대학교 위치, 혁명 및 암면미술 유산부(Place, Evolution and Rock Art Heritage Unit)의 Maxime Aubert는 연대측정의 정확성을 보장하기 위해 다양한 하위 샘플을 사용했다. |
우라늄 토륨 측정법은 술라웨시 작품의 연대를 측정하는 임무를 맡게 된 호주 골드코스에 있는 그리피스 대학교 위치, 혁명 및 암면미술 유산부(Place, Evolution and Rock Art Heritage Unit)의 Maxime Aubert가 사용한 기술이다. "우리는 연구를 진행하면서 샘플 하나당 최소 3개에서 6개까지의 하위 샘플을 측정했습니다. 나이는 모두 연대순으로 되어 있어서 샘플의 통합성을 보장할 수 있습니다. 만약 우라늄이 침출됐다면 반대되는 연대 분포를 얻었을 것입니다. 이는 연대가 지표면으로 향할 수록 젊어져야 하는데 오히려 오래된다는 것을 의미하죠"라고 그는 설명한다. Aubert는 2012년에 처음 여기에 참여하게 됐다. 인도네시아 고고학자들과 함께 벽화를 연구했던 그의 동료 Adam Brumm이 벽화 맨 윗부분에서 방해석 침전물을 발견하고 "와서 한 번 봐달라"고 Aubert를 초청했던 것이다.
우리의 모험은 마카사르에서 가장 인기있는 관광지로써 네덜란드에서 식민통치기간에 세운 로테르담 요새에서 시작되었다. 그곳엔 Balai Pelestarian Cagar Budaya Makassar(마카사르 문화유산 보존 센터)가 있다. 코코넛 나무와 테두리가 빨간색인 창문과 문이 있는 노란색 요새 벽으로 비가 내린. 가이드이자 통역가 역할을 담당한 Mubarak Andi Pampang 고고학자는 우리를 데리고 화강암 계단을 올라 센터의 부 센터장인 Muhammad Ramli의 사무실로 데려간다. 그는 인도네시아 문장 아래에 자리를 잡은 책상에 앉으며 우리를 따뜻하게 맞이하고 커피를 대접한다. 이번 여행에 분명히 열정이 있는 그는 해리슨 포드가 연기한 인기 헐리우드 고고학자의 팬과 비슷한 모자를 쓰고 있다. 우리는 그를 '인도네시아 존스'라고 부른다. 그는 미소를 지으며 우리를 데리고 밖으로 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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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LESLIE REFINE, GRAPH & CO / COURTESY MAXIME AUBERT |
가장 오래된 손 스텐실에서 가까운 곳에 이제는 흐릿해진 바비루사(돼지 사슴) 그림이 있다. 맨 위 Aubert는 이 그림이 35,400년 전, 서부 유럽에서 가장 오래된 조형미술 시대에 그려졌을 거라고 한다. 고고학자의 그림(아래)에는 동굴 팝콘 또는 과학적으로는 산호 모양의 동굴 암석이라고 알려진 점 같은 방해석 부착물 수십 개뿐만 아니라 바비루사, 손자국, 벗겨진 부분이 보인다. |
북쪽 Maros로 향하는 분주한 차 안에서 끊임 없는 호기심으로 대화가 이어졌다. 이전에 발견되지 않은 그림이 지금도 발견되고 있을까? 그렇다고 Pampang이 말한다. 현지인들에게 새로운 것이 발견되면 보고해달라고 부탁했고 그러면 국가에 소속된 고고학자들이 발견된 것들을 조사하러 간다고. "우리는 발견자를 완전히 신뢰하며 해마다 그들에게 포상을 하며 그 현장을 유지하고 보호하기 위해 그들에게 종종 일거리도 제공해줍니다"고 그는 설명한다. "그들이 자신들의 자랑스러운 유산을 이해할 수 있도록 해요."
곧 석회암 카르스트 지형이 이 풍경에 두르러지게 된다. 대부분 논으로 이루어진 평평한 평야를 지나가다 몇 킬로미터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 갑자기 석회암이 밀집된 언덕이 거대한 빵 덩어리처럼 200 ~ 300m 가량 불쑥 솟아올랐다. 이렇게 형성된 지형이 미술 갤러리가 되었다. 총 면적이 450평방 킬로미터에 이르는 이 지형은 술라웨시의 남서부 해안과 평행을 이루고 있는데 내부에서 흘러나온 강 옆에서 수백억 년 동안 깎여온 곳이다. 현재 최소 90개의 암면미술 현장이 보고되어 있는데 Ramli는 그 보다 더 많은 곳이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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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ang Sakapao 내부 깊은 곳에서 Ramli 고고학자는 짝짓기 하고 있는 바비루사 한쌍과 그 주변에 손자국이 여러 개 나있던 그림(어느 정도 독특한)을 가리키고 있다. |
우리는 언덕 발치에 위치한 Leang-Leang 선사시대 공원에 도착한다. 그곳의 센터에는 동굴을 돌보고 발굴 작업을 할 수 있는 직원 12명이 상주한다. 공원 곳곳에는 굉장히 멋진 천연 석회암 조각이 있다. 몇몇은 Henry Moore 전시회에 진열해도 어색할 것 같지 않다. 작은 강과 노란색, 파란색, 갈색 무늬의 나비들이 풍경을 더 풍성하게 해준다. 술라웨시는 다양한 종의 나비가 있는 걸로 유명하다. 우리는 여기서 4박 5일을 보내게 될 것이다. 기둥 위에 세워진 고고학자들의 나무로 만든 원룸 게스트하우스 바닥에서 잠을 청하며.
소중한 시간을 낭비할 생각이 없는 Pampang과 Ramli는 점심을 먹기 전에 우리를 데리고 공원 내 Leang Pettakere에 있는 첫 번째 그림을 보러 간다. Pampang은 “Leang”은 인도네시어로 "구멍"을 뜻하며 "동굴"이라는 뜻으로도 쓰인다고 설명해준다. 남부 술라웨시의 습한 공기 속에 비 내리는 숲속을 터벅터벅 걸어가 높지 않은 언덕을 등반하고 나면 동굴 입구가 나온다. 다른 사람들처럼 우리도 입을 쩍 벌린 입구를 만나게 될 것이다. 테두리가 석회석으로 쌓인 입구를 지나면 천년 동안 침식 작용으로 형성된 다리 모양의 거대한 수직의 돌출부가 나오며 그 주변을 요즘의 많은 장식품처럼 덩굴이 휘감고 있다. 거의 아무 소리도 없는 동굴에서는 끊임없이 똑똑 떨어지는 물 방울 소리만이 들린다. 얼마 지나지 않아 바로 그림이 보인다. 바비루사, 또는 "돼지 사슴"이라고 하는 첫 번째 그림이 보인다. 술라웨시에 고유한 동물로 오랫동안 식용으로 잡아먹었지만 이제는 멸종 위기 동물 목록에 올라있다. Ramli가 전에 이 그림을 복원하려 했던 흔적을 가리킨다. "Balai Pelestarian Cagar Budaya Makassarsms에서는 여기에서 보이는 것처럼 윤곽선을 날카롭게 하여 그림을 보존하려고 했었어요." 하지만 순식간에 사라졌다고 그가 덧붙였다.
이러한 술라웨시 동물 속 그림들과 앞으로 4일간 보게 될 그림들은 서부 유럽의 동굴 속 그림들과 많은 공통점을 공유하고 있다. 요하네스버그에 있는 비트바테르스란트 대학교 암면미술 연구 기관에서 명예교수와 수석고문으로 있는 David Lewis-Williams 1960년 이후로 유럽 미술에 대해 관찰하고 연구하고 기록해왔다. "유럽의 미술은 가끔 다른 예술과 겹칠 때가 있다." 그는 기록했다. "상대적인 크기에 대한 관심 없이 병치된다. 많은 그림들이 단편적이며 머리는 동물에서 가장 자주 묘사되는 부분이다." 그림들은 땅에 대한 묘사 없이 상이한 방향에서 만난다. 발굽이나 그 외 부분들이 늘 그려져 있는 것은 아니지만 그 부분들이 그려져 있는 그림에서는 종종 땅을 밟고 서있는 것이 아니라 매달려 있다고 그는 덧붙인다. 게다가 "그림에는 컨텍스트도 없고 나무나 잔디나 그 외 배경도 없다." 그가 관찰한 내용을 술라웨시 그림에서도 뚜렷하게 볼 수 있다.
손 스텐실은 거의 모든 동굴에서 볼 수 있다. Lewis-Williams는 남서부 유럽의 손 스텐실을 해석하는 것은 복잡하다고 말한다. 그는 이미지를 만드는 것은 종교의식적인 것이라고 말한다. "동굴은 영적인 지하 세계로 들어가는 통로라는 걸 알아야 합니다." 또 그는 세계 간의 장막이라고 덧붙였다. "장막에 손을 대는 것은 단순히 손자국 그림을 남기려는 것(내가 여기 있다는)이 아니라 영적 세계나 그 능력과 접촉하기 위해서이다. 손에 묻힌 물감은 '용제'로서 장막을 더 쉽게 관통할 수 있게 해주는 능력이 있는 물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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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Maros-Pangkep 이미지에서 범상치 않은 것으로 Bulu Sipong 벽에 나타난 작은 배와 두 사람이 있다. 한 사람은 고기를 잡고 있고 다른 한 사람은 노를 젓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
Ramli는 이 점을 지적한다. "이 사람들 중 일부는 손가락이 3개나 4개밖에 없어요. 또 다른 일부는 손바닥밖에 없고 또 일부는 팔밖에 없어요." 이와 비슷하게 불완전한 손가락 그림은 남서부 유럽과 호주의 손 스텐실에서도 찾을 수 있다. 설득력 있는 이론들은 언어적인 신호에서 손가락을 구부렸을 것이라는 것이 아니라 손가락을 절단하는 의식적 행위나 괴저와 같은 자연적인 원인 때문에 손가락이 없는 것이라는 입장으로 변화했다. "이전의 연구들에서는 비통에 빠졌을 때 손가락을 절단했던 파푸아나 호주 원주민의 문화와 비교했어요." Ramli는 덧붙인다.
1990년대 초기에 프랑스의 선사시대 예술 전문가 Michel Lorblanchet는 프랑스의 한 동굴에서 실제적인 측면에서 몇 개의 실험을 진행했다. 그는 벽에서 7 ~ 10cm(2" to 4") 정도 떨어진 곳에서 입으로 물감을 발사해 "스핏 페인팅(spit-painting)"을 모사하고 다양한 손 그림을 매우 밀접하게 복제했다.
이런 관습이 계속되어 왔는지는 알 수 없지만 손 스텐실 전통은 Bugis라고 하는 술라웨시 남서부의 지배적인 민족집단에 오늘날에도 존재한다. 한 가족이 집을 새로 건축하면 그 집으로 이사하기 전에 특별히 임명한 진행자가 관장하는 의식 중에 집안의 가장이 콩가루나 쌀가루를 섞어놓은 것에 손을 댄 후 중심 기둥에 손을 꾹 누른다. 이러한 행동이 새로운 집에 행운을 몰고 온다는 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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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 위: Ramli와 Pampang은 이 그림에서 삐죽삐죽한 머리를 하고 있는 여자가 아노아(작은 물소랑 매우 비슷하게 생긴 동물)를 올가미로 매고 끌고 가고 있다고 해석한다. 위: Leang Sakapao로 들어가는 입구에서 커피와 과자를 먹으 휴식을 취하고 있는 탐험 스탭들. |
이제 우리는 논과 목장 주변의 융기한 잔디길을 따라 발굴 작업의 역사가 1970년부터 2012년까지 길게 이어진 Leang Burung 2로 걸어서 이동한다. 동굴의 이름은 대부분 현지인들이 동굴을 처음 발견했을 때 무엇이 먼저 보였는지를 기준으로 지었다. "Burung"은 "새'를 의미한다. Pampang은 제비들이 이곳에 아주 넓게 앉아 있곤 했다고 말해준다. 이곳은 동굴 안에 있는 것이 아니라 절벽 밑에 있지만 절벽 위에는 그림들이 그려져 있는 동굴이 있다. 40년간 6m 깊이로 급수가 끝나는 곳까지 발굴 작업이 진행되었다. 그곳에서 고고학자들은 35,000년 전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인류가 도구를 만들고 식사를 했던 가장 거듭되어온 기록 중 하나를 발견했다. 그 당시 술라웨시에서 현대 인류의 출현에 대한 가장 오래된 증거이다. (자바의 다른 지역에는 45,000년 전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증거도 있다.)
Leang Burung 1이라고 하는 인근 자매 지역에서는 동굴 입구에서 나무가 제거된 후 햇빛과 이산화탄소가 많이 유입되어 수많은 그림들이 얼마나 빠르게 사라졌는지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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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amli는 그 지역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오커를 부수며 많은 그림에서 사용된 색소를 만들기 위한 첫 단계를 보여주고 있다. |
첫 날 4개의 동굴을 탐험하며 고무적인 시작을 할 수 있었다. 베이스캠프에 돌아오자 현지 고고학 케이터링 직원이 저녁을 들여왔다. 밥, 생선, 그리고 서양 사람들이 소꼬리라고 부르겠지만 인도네시아에서 인기가 있는 숲 분뚜(sop buntut)가 있었다.
둘때 날에는 기분전환으로 인도네시아의 문화를 경험한다. Syarifuddin이라고 하는 부기족 현지인은 우리를 자기 집으로 초대해 4년 전 의식에서 찍었던 손자국을 보여준다. 그는 자신의 부인 Mirnawati와 아들 Mohammed Dirgah를 우리에게 소개시켜 준다. 물론 지금은 사라졌지만 분명 그의 손자국은 집을 받치고 있는 6개의 기둥에 각각 찍혀있었을 것이다.
이제 동굴로 돌아간다. 주변에 더 넓은 논이 펼쳐진 언덕을 올라간다. 종종 진흙 속에 발을 푹푹 빠져가며 카르스트 지형을 향해 올라간다. 이곳은 간조 지역이라 우기에는 올 수 없는 곳이라서 우리가 Leang Jing(악마 동굴)에 올 수 있는 것은 운이 좋은 거라고 Pampang이 말한다. 흔들거리는 대나무 사다리 대가 다른 사다리보다는 두 배나 멀리 떨어져 있어 질척거리는 부츠를 신고 올라가기에는 험난하다.
하지만 시원하고 어둑한 동굴 내부로 한 번 들어가면 험난했던 과정은 다 잊혀지니 올라갈 만한 가치가 있다. 우리는 고대의 낚시하는 모습과 어부들의 삶이 그려진 진정한 융단을 맞이하고 있다. 물고기를 쳐다보고 있는 펠리컨에서부터 삐죽삐죽한 머리 모양을 한 여자가 아노아(작은 물소처럼 생긴 동물로 인도네시아의 토착동물)를 옭아맨 모습이 있는 곳까지 램프와 손전등을 모든 곳에 비춰본다. 아노아는 오늘날 거의 보이지 않는다. 아노아는 지금은 보호종이 되었다고 Pampang이 말해준다. 펠리컨의 목은 우아하게 굽이져 있다. 펠리컨 입 속에 들어있는 물고기가 완벽한 모양의 꼬리와 몸통을 자랑스럽게 선보인다. 여기엔 동물만 있는 것이 아니다. 인도네시아의 발 스텐실도 몇 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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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에서 오른쪽: Leang Bulu Balang에 십자 모양의 등껍질, 머리, 꼬리, 물갈퀴/다리가 함께 묘사되어 있는 거북이. Leang Lasitae의 전면 벽에 작은 물 웅덩이에서 수영을 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생선 한 쌍. "이건 바다 생물이고 Jing 동굴에 있는 그림은 민물고기예요"라고 Pampang은 말한다. Leang Jarie에 작은 구상화에는 사람이 보인다. |
우리들 눈에는 그림들이 매우 잘 보존된 것처럼 보이지만 Ramli는 1980년에 이 그림들을 처음 봤을 때는 그 수가 더욱 많았고 더 분명했다고 한다. 방해석의 증가로 많은 그림 문자들이 지워지고 있다. 그는 Aubert 팀이 작은 다이아몬드 날로 연대측정 샘플을 취했던 곳을 보여준다. 이 샘플은 25,000년 전으로 측정되었다.
근처에 있던 Leang Jarie(손 동굴)는 처음 발견되었을 때 거의 모두 손자국과 손 스텐실로 되어 있어서 그렇게 이름이 지어졌다. 하지만 지금은 다른 대부분의 동굴들처럼 다수가 최근 생겨난 방해석으로 덮여 있어서 분명한 그림은 별로 없다. Ramli는 모든 동굴에 방해석이 침투한 이유 중 하나가 대기 중 이산화탄소 수준의 증가라고 생각한다. 이산화탄소는 석회석과 반응하여 표면에 새로운 방해석 침전물을 형성한다.
다음은 Leang Timpuseng이다. 아마도 우리가 이렇게 멀리까지 온 이유는 이 동굴을 보기 위해서일 것이다. 이곳에서 Aubert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손자국 그림을 연대측정했다. Ramli는 그 스텐실과 샘플을 채취했던 모서리를 따라 난 작은 점을 보여준다. 십자 모양으로 정밀한 층들이 있다. 그림 위에는 방해석 층이 있고 그 밑에는 아주 얇고 붉은 색소층과 석회석이 있다. 우리는 경탄에 빠진 채 이론에 있어서 혁명이 일어나는 제로 지점을 만들어낸 이 작은 샘플을 쳐다본다. 손이 다인 것은 아니다. 바비루사 그림에서 채취한 샘플은 35,40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동물에 있어서는 가장 오래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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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ulu Sipong의 지네(왼쪽)를 보면 작품자가 물체의 특성을 강조하기 위해 바위의 천연적인 특징을 활용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서부 유럽의 동굴 그림에서는 흔한 기술이지만 술라웨시에서는 드물다. 오른쪽: 이 흐릿한 그림에는 굽어진 목을 하고 물고기를 쳐다보고 있는 펠리컨의 모습이 보인다. |
셋째 날에는 북쪽으로 30분간 논을 지나 Leang Lasitae로 간다. 동굴 전면 위에는 물고기 두마리가 직각으로 교차하고 있고 동굴 안에는 훌륭한 물고기 그림이 매우 많이 있다. Pampang은 수중 이미지가 지배적으로 많은 이유는 그것이 주된 자원이어서 그럴 것이라고 설명한다. 오늘날에는 바다가 2km나 멀리 있지만 그 당시에는 더 가까이에 있었을 것이다. "이건 바다 생물이고 Jing 동굴에 있는 그림은 민물고기예요"라고 Pampang은 말한다. 모양이 매우 정확해서 모든 종인지 추론할 수 있다고 그는 덧붙인다.
여기서부터 Leang Bulu Balang으로 조금 걸어간다. 그곳도 물을 마주하고 있다. 여기에 첫 번째 거북이 그림이 있다. 거북이 그림 두 개에는 십자 모양의 등껍질과 머리, 꼬리, 물갈퀴가 분명하게 표현되어 있다. 이 거북이들도 멸종 위기에 처했다고 한다.
Pampang은 계속 걸어가며 다음 동굴에는 독특한 것이 기다리고 있을 거라고 한다. 물이 가득 들어찬 논을 지나 진흙이 잔뜩 묻은 부츠를 신고 축축한 길을 걸어 석회석이 쌓인 가파른 언덕을 올라가서 만난 Leang Sakapao는 실망시키지 않는다. 1m가 넘지 않는 천장에 그려져 있어 그림을 살펴보려면 바닥에 누워야 한다. 이 그림은 천장에 그려져 있던 그림은 짝짓기를 하고 있는 바비루사 한 쌍의 현실적인 형상이다. Ramli는 먼지 위에 등을 대고 누워 그림을 자세하게 가리킨다. "보이는 것처럼 돼지 사슴이 수컷과 암컷이 있어요." 그는 바비루사가 짝짓기하고 있는 그림은 이것 외에는 모른다고 한다. 이와 같은 짝짓기 그림은 유럽의 동굴에서도 매우 희귀한 그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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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ulu Sipong에 그려져 있는 쥐가오리. |
마지막 날에는 한 시간 동안 고속도로를 달리고 30분 동안 내륙 수로를 따라 모터 하나 달린 길고 좁다란 낚싯배를 타고 간 후에 Bulu Sipong 동굴에 도착했다. 또 동굴에 들어가서는 20분 동안 언덕을 오르기도 하고 바닥을 기어가기도 했다. 이곳에도 새로운 볼거리가 있었다. 서부 유럽의 그림에서는 흔하지만 술라웨시에서는 드문 기술로 물체의 형상을 돋을 새김으로 강조하기 위해 바위의 천연적인 특징을 이용하는 것이다. 탄산칼슘이 흘렀던 융기한 개울 위에 그려진 지네를 묘사하는데 사용된 방법을 볼 수 있다. 이것은 생물의 몸통으로 사용되었다. 또 옆에서 본 모습과 위에서 본 모습으로 묘사된 희귀한 그림으로 배와 그 위에 타고 있는 두 명의 사람이 그려져 있다. 한 사람은 고기를 잡고 있고 다른 한 사람은 노를 젓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Ramli는 이러한 배 그림들은 연대측정에 이상적이라고 말하지만 안타깝게도 이 그림들에는 방해석이 충분히 쌓이지 않았다. 한 가지 더 희귀한 볼거리가 있다. 바로 쥐가오리 그림이다.
후에 마카사르에서 진행된 인터뷰에서 Hakim은 동굴 안에서 왜 그렇게 많은 야생 동물들을 볼 수 있었는지에 대해 설명해줬다. "우리는 언제나 그림을 일종의 마법적인 것, 신성한 의식과 관계를 지었어요. 사냥이 잘 되길 바라는 기도 같은 것처럼 말이죠." 그것은 또한 그들의 주변환경을 묘사하는 하나의 방법이라고 그는 덧붙인다.
지난 4일간 단순히 그림만 본 것이 아니라 인류 초기 예술의 진화라는 세계적인 그림에 술라웨시를 끼워넣었던 선사시대의 정신을 살짝 엿본 것 같다. 하지만 다른 이론들처럼 이 이론도 확고해지려면 시간이 더 필요할 것이며 논쟁의 여지 없이 완전하게 받아들여지려면 더 많은 연구와 더 많은 연대측정 프로젝트가 수행되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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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ang Sakapao로 가는 절벽 위에 가파른 길을 따라 튀어나온 바위. 이곳에서는 주변 언덕의 극적인 광경을 볼 수 있다. 풍경의 일부가 나무 줄기 같은 거대한 석회석 기둥에 가려져있다. 이 지역은 인구 증가와 인간의 활동으로 인해 오랫동안 그림을 보존해왔던 이산화탄소와 수분과 기타 환경 조건의 민감한 균형이 깨져 더 많은 연대측정 작업과 지역 보존이 긴급해졌다. |
Hakim도 아직 발견되지 않고 연대측정을 하지 않은 상태로 남아있는 더욱 많은 동굴 벽화를 계산해본다. 그는 고대의 술라웨시를 현대 인류의 초기 이동에 있어서 또 하나의 멜팅팟(melting pot, 잡다한 인종과 문화가 혼합되어 있는 곳)으로 본다. 그는 그 예로 "칼리만탄(보르네오)은 술라웨시로 가는 하나의 다리였다"며 결과적으로 술라웨시는 시험해봐야 하는 새로운 핵심 지역이라고 말한다.
Aubert도 동의한다. 그는 술라웨시에 있는 암면미술을 더 많이 연대측정해볼 계획이라고 하며 현재 그는 칼리만탄에서 발견된 그림들을 연대측정하고 있다. 그는 서남 아시아에 있는 더 많은 암면미술의 연대를 확인함으로써 술라웨시 작업에 컨텍스트를 제공할 것이다.
하지만 더 긴급한 의미에서 시간도 중요하다. 4일간의 동굴 방문으로 보았듯이 술라웨시의 그림들은 환경으로부터 공격을 당하고 있다. 그림은 빠르게 사라지고 있다. 우리는 마카사르 사무실로 돌아와 걱정이 많은 하사누딘 대학교의 고고학 교수 Iwan Sumantri와 함께 센터 도서실에 앉았다. "연구원으로서, 또 고고학자로서 저는 Maros-Pangkep에 있는 선사시대 동굴 주변에서 벌어지고 있는 채굴 작업이 걱정스러워요." 그가 말한다. "게다가 현지인들이 동굴을 어떻게 위협하나 보세요. 동굴 주변에서 벼를 태운다든가 하면서요. 암면미술이 더 빠르게 악화되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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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들이 Leang-Leang 선사시대 공원 내에서 길을 따라 걷고 있다. 이곳에는 동굴 벽화에 대해서 잘 기록되어 있지만 알려진 동굴 127곳 중 대부분은 이 공원의 영역 밖에 있어 90곳만 조사했다. 아래 오른쪽: 40,000년 전에 시작된 관습이 현대적인 반향으로 울려 퍼지는 곳. 공원 근처의 한 마을에서 거주 중인 Syarifuddin이 행운을 불러오기 위해 4년 전 의식 중에 집 기둥에 찍은 빛 바랜 손자국(전통에 따라)을 보여준다. |
보존 작업은 연대측정을 새롭게 하게 되면 새로운 긴급성을 띄게 된다. Sumantri는 현장보존에서의 첫 단계는 문서화이며 지금까지 발견된 예술이 있는 동굴 127곳 중에 90곳이 기록되었다고 말한다. 둘째로 그는 규율과 제재가 따르는 공적 정보와 인식 프로그램을 지지한다. "예를 들어, 다른 암면미술과 관계가 있는 재료를 연구함으로써 그림을 오래 지속시킬 수 있는 물리적 보존 작업을 수행할 수 있어요." 더욱 중요한 현장 중 일부에 설치된 울타리와 같은 물리적 장벽이 파손을 줄이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그는 덧붙인다.
어쨌든 이러한 곳들은 세계적으로 중요한 현장이다. 그리피스 대학교의 Paul Taon은 2014년 "위대한 서남 아시아의 초기 암면미술이 세계적으로 끼치는 영향"이라는 이름의 고대 관련 기사에서 공동저자와 함께 "서남 아시아나 유럽뿐만 아니라 호주의 암면미술에 대한 우리의 이해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썼다. 그는 또 "예를 들어 Kakadu-Arnhem 섬과 북 호주의 그 외 지역에서는 가장 오래된 암면미술에 자연주의적인 동물과 스텐실이 포함되어 있다"고 덧붙인다. "이는 이런 종류의 디자인을 만드는 관습이 초기 식민지화 시대에 호주로 전해졌지만 그 대신 문화적 접촉으로 인해 아직 알려지지 않은 형식으로부터 독립적으로 창조되었다는 가능성을 열어준다. 세 가지의 모든 가능성이 똑같이 흥미롭다."
Alistair Pike는 이러한 질문들을 다루기 위해 새롭게 조사해야 할 지역에 아라비아 반도(이곳은 새로운 연구가 현재 진행 중이다)와 인도, 또 해안 지역의 이주 경로를 포함한 지역을 포함시켜야 한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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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고학자 Ramli, Pampang과 그들의 팀은 여러 마을을 지나면서 거주민들과 대화를 하며 동굴 안에서의 나흘을 보낸 후 배를 타고 떠난다. Pampang은 지역 관계가 성공적인 보존을 위한 키라고 말한다. "그들이 자신들의 자랑스러운 유산을 이해할 수 있도록 해요"라고 그는 말한다. |
이 모든 것을 착수시켰던 것은 술라웨시에서의 연대측정이었다. "새로운 연대측정은 인류의 창조성이라는 역사에서 새로운 장을 엽니다"라고 Aubert는 말한다. "연대측정을 통해 40,000년 전 동일한 시대에 지구 반대편에 있던 인류도 함께 동굴의 벽과 천장에 그림을 그렸다는 것을 알 수 있어요. 이는 인간의 창조성, 아마도 아프리카에서의 창조성의 더 깊은 기원을 제시하며 우리 인간은 특별한 종이며 예술이 우리를 인간으로 만들었다는 개념을 강화시켜주죠."
Hakim은 인도네이아에서 특별히 기쁜 일이라고 말한다. "가장 오래된 암면미술은 언제나 유럽에 있다고 알려져 왔어요. 이제는 Maros에 있는 것이 가장 오래된 거예요. 정말 자랑스럽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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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Graham Chandler (www.grahamchandler.ca)는 고고학, 항공 및 에너지와 관련된 주제에 중점을 둔다. 그는 런던 대학교에서 고고학 박사 학위를 받았고 현재 앨버타 주 캘거리에 살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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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ridith Kohut(meridith.kohut@gmail.com; @meridithkohut)는 2008년부터 전세계의 수많은 간행물을 위해 라틴 아메리카에서 뉴스, 특집 및 비디오 사진 보도를 제작해 왔다. 텍사스 대학교 언론 대학원을 졸업한 그녀는 베네수엘라의 카라카스에 살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