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ol. 65, No. 32014년 5월/6월

In This Issue

그린 사하라의 마지막 호수들 - 글/사진 Sheldon Chad
응앵가(Ounianga)의 호수 18개 중 하나인 야자수로 둘러싸인 부쿠 호(Lake Boukou)의 주위에 있는 모래언덕과 단층 지괴에 석양이 내려앉는다. 이곳은 한때 푸르렀던 사바나이자 광대했던 "고(古)호수(paleolakes)"였다.

해가 뜬 지 몇 분이 지나지 않아 낡은 전세 비행기가 차드 북부에 점점이 흩어진 오아시스 중 가장 큰 파야 라르고(Faya Largeau)에 무사히 착륙한다. 아래의 사하라 남부는 어두운 달 아래의 풍경에서 모래언덕의 모습이 나타나고 보일락말락한 오렌지빛이 보인다. 처음에는 하나, 곧 여러 개가 보이고 비행기가 착륙할 때 대추야자 숲도 눈에 들어온다.

공항 보안 책임자 Mahamat Souleymane이 내 여권의 성을 보고 환한 미소를 짓는다. "차드에 온 것을 환영합니다."라고 말하면서 그 이중의 뜻을 강조하고, 다시 한 번 말했다. 

나는 지구의 크게 비정상적인 지질학적 작품 응앵가(oo-nee-ahn-ga) 호를 통해 사하라의 기후 역사를 탐구하려고 이 중앙아프리카 국가에 왔다. 유네스코는 2012년에 내부적으로 연결된 담수, 염수, 초염수 호수 18개를 세계 유산에 넣었다.  

콜럼비아대학교의 해양지질학자 Peter deMenocal은 "호수는 저마다 이야기가 있다."고 한다. 그의 연구는 사하라의 기후 역사에 대한 최근의 생각을 담고 있다. 그러니 환경적으로 어울리지 않는 곳에 있는 듯한 여러 호수에서 무슨 이야기를 듣겠는가? 가장 가까운 호수인 차드 호(Lake Chad)에서 800 km 이상 떨어진 깊숙한 사막에 있는 호수들이다. 이 이야기를 따라가며 연구하는 탐사길에 오른 사람이 둘 있다. 그 중 하나는 4x4 차량으로 하루가 걸리는 길을 떠나기 위해 준비한다. Baba Mallah라는 이 사람은 차드가 유네스코(UNESCO) 활동을 열심히 할 것을 촉구하는 과학위원회의 회장이자 이 나라의 과학을 이끄는 과학자이다.

지질고고학자이자 40년 동안 사하라 동부를 연구한 베테랑 Stefan Kröpelin은 응앵가 호의 바닥을 연구하여 사바나가 정확히 언제 어떻게 오늘날의 사하라가 되었는지 알려고 한다.
지질고고학자이자 40년 동안 사하라 동부를 연구한 베테랑 Stefan Kröpelin은 응앵가 호의 바닥을 연구하여 사바나가 정확히 언제 어떻게 오늘날의 사하라가 되었는지 알려고 한다.

Baba (차드에서는 관습적으로 성이 아닌 이름을 부른다)의 옆에 있는 다른 사람은 독일 쾰른대학교의 베테랑 지질고고학자 Stefan Kröpelin으로, 40년 동안 사하라 동부를 파헤쳤으며, 1999년부터는 응앵가를 연구하고 있다. 

Baba의 임무(ordre de mission)는 Kröpelin와 함께 일하며 호수들을 과학적으로 검토한 결과를 유네스코 자료에 업데이트하는 것이다. 그러는 중 새 발견을 할 수도 있다. Baba는 신이 나서 내게 말했다. "사막에는 알려지지 않은 지질학적 요소가 있다. 사막에는 자연적인 미와 신비 등 모든 것이 있고 이것들은 우리의 부가 된다. 다른 나라 사람들이 숲을 사랑하듯이 차드인은 사막을 사랑한다." 

짐칸을 수리하여 짐과 함께 저녁으로 먹을 양을 싣고, 한 달에 한 번 탈까말까 한 랜드크루저에 올라 흙길을 떠난다. 이제 목표를 향해 가는 것이다. 응앵가 케비르(Ounianga Kebir"큰 응앵가"). Kröpelin는 농담조로 이것이 "고속도로"라고 한다. 차를 모는 Abdulrahim은 땅바닥이 부드러운 모래임을 알면 오래된 바퀴자국을 벗어난다. 변함없이. 

고개를 돌릴 때마다 사막의 색은 변한다. 외로운 나무 한 그루가 기적적으로 살아 있다. "덫돌"이 있다. 먼 선조들이 짐승을 덫으로 몰아 죽이는 데 썼으며 곧 우리 종을 살린 물건이다. 철기시대가 시작된 곳에 가까이 온 것이다. 우리가 출발한 곳에도 가까이 왔다. 멀지 않은 사막에서 2001년, 2002년에 두개골 조각 등의 화석이 발견되어 Toumai, 이곳의 고란어로 "생명의 희망"으로 명명되었다. 7백만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Toumai는 알려진 종 중 가장 오래된 원인으로, 침팬지와 인간이 분화된 시점에 가장 가깝다. Baba는 Toumai에 과학적인 이름을 붙였다. Sahelanthropus tchadensis. 

해가 지기 한 시간 전에 아치 모양을 한 거대한 바르한 모래언덕 가까이에 야영을 하려고 자리를 잡았다. 이곳은 표면이 미끄러우며 밤에 부는 바람을 막아 줄 것이다. 밝은 오렌지색 사막은 100 m까지 뻗어 있다. 모래언덕 하나에 순수한 규석 200,000톤이 있을 수도 있다. 사하라의 수많은 모래언덕과 마찬가지로 지중해의 모래에서 형성된 것이다. 마치 철새떼처럼 harmattan 무역풍에 밀려 수천 년 동안 해마다 약 8 m씩 남으로 움직였다. 지금까지 약 2,400 km를 이동했다고 한다. 

그날 밤 별이 빛나는 하늘 아래서 양탄자를 깔고 앉아 양고기를 먹었다. 거의 전국에서 쓰이는 차드 아랍어, 고란어, 차드 북부 방언, 불어, 영어, 독일어 등 여러 나라 말로 대화를 했다.

소금 호수는 세계 사막 곳곳에 있지만 담수 호수가 있는 사막은 없다. 물리학자이자 차드국립과학연구센터 소장인 Baba Mallah가 말한다. 그는 갈대로 덮인 부쿠 호수가에 서서 갈대 때문에 물이 더디게 증발되며 그에 따라 아래의 대수층에서 침윤이 활발해져서 호수의 물이 담수로 유지된다고 한다.
"소금 호수는 세계 사막 곳곳에 있지만 담수 호수가 있는 사막은 없다." 물리학자이자 차드국립과학연구센터 소장인 Baba Mallah가 말한다. 그는 갈대로 덮인 부쿠 호수가에 서서 갈대 때문에 물이 더디게 증발되며 그에 따라 아래의 대수층에서 침윤이 활발해져서 호수의 물이 담수로 유지된다고 한다. 

훈련받은 물리학자인 Baba는 다방면의 과학자로, 17년째 차드의 모든 연구를 감독하는 the National Center for the Support of Science를 이끈다. 그는 2012년에 석유협회의 심의관이 되었다. 왕가의 후예인 그는 11세기에 중앙아프리카에 이슬람교를 전한 Kanem-Burnu의 자손이다.

Baba는 어릴 때부터 응앵가 호를 알았다. 그가 사는 마을은 남쪽에서 가장 가까운 Kanem에 있었다. 북으로 간 사람들은 Toubou, "남에서 온 형제들"이라고 했고, 남은 사람들은 Kanembu, "산에 사는 사람들의 형제들"이라고 했다. 

밤이 깊어지자 차드관광청의 심의관 Mahmoud Younous는 모래언덕 곁에 친 비박을 빗대어 별 갯수로 호텔 등급을 정하는 것에 농담을 던졌다. "le hotel de milles étoiles"—"수천성 호텔." 사실 별은 수백만 개인데 훨씬 줄잡은 것이다.  사하라에서 밤을 보내는 것은 자연의 힘을 체험하는 것이다.

map

다음날 일찍 길을 나서 수평 지층 암석, 단층 지괴를 지났다. 비슷하게 형성된 다른 것으로 수백만 년 동안 harmattan이 공기역학적으로 조각한, 바늘, 피라미드, 스핑크스 모양을 한 yardang이 있다. 

그리고 식생을 다 먹어 없애겠다는 듯이 풀을 뜯는 낙타떼를 보았다. 차가 오르막길을 달렸다. 이제 다 왔다는 것을 알지만 풍광을 보니 다시금 숨이 막혔다. 응앵가 케비르의 급경사면을 내려가니 신기루가 눈에 들어왔다. 풍성하고 짙푸른 잎들과 짙은 청색 호수. 모래바람 사이로 실눈으로만 보게 되니 더 초현실적이었다. 이곳에 있는 내내 바람을 듣고, 만지고 느끼며 냄새를 맡기까지 한다.

차드인은 다른 경이에 사로잡혔다. 휴대폰 붐이다. 그러고 보니 근처에 기지국이 있다. 탐사길에 오른 사람은 모두 수도 은자메나로 전화를 걸거나 문자를 보내고 있다. 

응앵가 케비르에 있는 우마(Uma) 호에 이르자 해가 졌다. 우리가 처음 도착한 호수인 이곳은 모두 호수 네 개로 되어 있다. 이 염수호를 가르는 모래톱에서 어떤 사람이 여유롭게 물에 뛰어든다. Spirulina platensis라는 조류의 영향으로 물 색깔은 붉었다. 이 조류는 15 cm 두께로 호수를 덮고 있다. 냄새가 난다. Kröpelin은 우리가 오기 몇 주 전부터 바람이 거의 불지 않아서라고 한다. "바람이 불면 냄새가 나지 않는다." 그는 말한다. 그러나 냄새도 사하라에서 헤엄치는 사람도 꽥꽥거리는 개구리에 비하면 놀랍지 않다. 

아프리카의 습기시대라고도 하는 그린사하라 시대의 산 증인으로, 그린사하라는 약 11,000년 전부터 5,000년 전까지 지속되다가 끝났다고 하지만 여기 응앵가에서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한때 북아프리카 사바나에서 활개쳤던 생물학적 유물인 개구리는 코끼리, 기린, 하마, 영양, auroch이라는 길든 소의 야생 조상이 한때 머물다 사바나가 불타는 사하라 사막으로 변해 사라진 뒤에도 살아남았다.

부쿠 호 위에 있는 언덕에 캠프를 쳤다. 두 번재 호수 군락인 응앵가 세리르(Ounianga Serir"작은 응앵가")에 있는 호수이다. 응앵가 케비르에서 50 km쯤 가면 나온다. 야자수로 둘러싸인 부쿠 호는 담수호이다. 녹색 갈대에 반쯤 덮인 짙푸른 호수는 화성 풍경 같은 단층 지괴와 떠 다니는 모래언덕의 모습을 보완하는 듯하다.

탁 트인 곳에 캠프를 쳤을 때는 오전 3시였다. 머리맡을 어슬렁거리는 자칼 다섯 마리를 보고 소스라치게 놀랐다. 겨우 1 m 거리였다. 어떤 놈이 내 어느 부위를 먹을지 정하는 것 같았다. 놈들을 쫓아 버리고 다시 점을 청했다가 깨니 해가 멋지게 돋았다. 사방이 적막하다. 오랜지섹 사막, 단층 지괴, 호수. 떠오르는 해 아래서 모두 끓어오른다. 

호숫가로 걸어 내려가다가 발에 무엇이 걸려 그 멋진 경치에서 눈을 돌려야 했다. 돌망치, 긁개 같은 도구들이 널브러져 있다. 50만 년 전에서 신석기의 "겨우" 5,000년에서 10,000년 전까지의 것들인데, 신석기의 것은 "새 것" 축에 든다. Baba는 풀밭 같은 곳에서 단파 라디오로 뉴스를 듣고 있다. 하지만 사실 호수 일부 위에 갈대가 자란 것이다.

아래의 부쿠 호 담수는 보기에 좋을 뿐 아니라 수중 식물들에게도 좋은 서식처이다.
아래의 부쿠 호 담수는 보기에 좋을 뿐 아니라 수중 식물들에게도 좋은 서식처이다.  

 "소금 호수는 세계 사막 곳곳에 있지만 담수 호수가 있는 사막은 없다." Baba가 말한다. 

소금 호수는 세계 사막 곳곳에 있지만 담수 호수가 있는 사막은 없다. Baba가 말한다.

사하라는 세계의 뜨거운 사막 중 가장 크다 (극지방도 사막이며, 더 크다). 이곳의 태양은 너무 뜨겁다. 근처의 요안 호(Lake Yoan)의 물이 아주 빨리 증발하여 해마다 수면이 6 m씩 낮아질 정도이다. 3,000년 전부터 지금까지는 일년에 밀리미터 단위로 비가 오는 초불모 시대라고 할 수 있다. Baba는 이곳의 호수는 어느 곳이든 "소금이 너무 많아 바다가 될 수도 있다"고 한다. 그렇지 않으면 오래전에 사라졌을 것이다.

"하지만 응앵가에는 이렇게 큰 염수호가 있다." 이 모순에 밝게 웃으며 Baba가 말한다. 그의 미소가 증발 속도를 더 높이는 듯히다. 

Baba는 6 m까지 자라는 PhragmitesTypha라는 갈대의 속(屬)을 가리킨다. 수면 아래로는 20 m까지 잠겨 있다. "이것들 때문에 햇빛이 물 속을 직접 비추지 않는다." 그는 설명한다. "증발 속도가 아주 느려서 염수가 유지된다." 수많은 물고기와 갑각류를 보니 그 말이 맞는 것 같다. 

지금 보이는 것은 세계 유일의 수리학 시스템으로, 응앵가 세리르의 염수호 11개 중 하나만 빼고 모두를 보존한다. 좀더 알기 위해 중앙부의 틸리 호(Lake Tili)로 간다. 그러나 또 물러나야 한다.

습기 시대 수천 년 동안 지금의 누비아 사암대수층에 물이 모여 사하라 동부 지하로 흘렀다. 세계에서 가장 큰, 화석을 담은 대수층으로, 차드, 수단, 이집트, 리비아에 약 200만 제곱킬로미터 넓이로 뻗었으며 가장 깊은 곳은 4,000 m이다. 이 대수층에서 물이 공급되어 응앵가 호로 올라간다. 응앵가는 이 덕분에 지금까지의 기후 변화를 견뎠다.

그러나 바르한 모래언덕도 기억하자. 조금씩 그러나 유감없이 이것들은 "megabarchans"으로 합쳐져 수백 킬로미터를 뻗어나가는 모래언덕의 회랑을 이루었다. 오래 전 응앵가 케비르와 세리르라는 두 원 호수로 나뉘어 들어갔다. 오늘날 우리가 보는 더 작은 호수 군락들은 여기서 갈라진 것이다. 

랜드크루저를 타고 가면서 보니 모래언덕이 뻗어서 분지의 호수들을 가르는 양상이 잘 보인다. 하염없이 계속되는 이 운동은 언젠가는 호수들을 흔적 없이 덮어 버릴 것이다.  

차드 북부의 가장 궁벽한 마을 두 곳 중 하나는 응앵가 케비르의
차드 북부의 가장 궁벽한 마을 두 곳 중 하나는 응앵가 케비르의 가운데에 있으며 이곳의 지도자는 Aahmat Moussa Thozi, 다른 하나는 응앵가 세리르의 오른쪽에 있고 이곳 지도자는 Nebe Guett이다. 이곳을 통해 전설적인 부족의 역사가 오늘날 과학으로 이어진다. "이 호수 옆에 살던 민족은 아주 오래 전 사람들이었다. 우리 조상은 호수에서 나왔을 것이다." Thozi가 말한다. 이 지역의 멀지 않은 곳에 7백만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원인과 인간의 거주지가 있었다. 2001년, 2002년에 여기서 Toumai 두개골 화석이 발견되었다. 오른쪽 아래: Ahamadai Barkai가 응앵가 호수지역 코디네이터로 있는 차드관광청은, Guett의 말을 빌리면 "긍지의 근원이 되어 밝은 미래를 꿈꾸게 하는" 모험 여행을 홍보한다. (참고: 종이책에서는 Ahamadai Barkai가 잘 보이지 않음).
심의관 Younous Mahmoud가 이끄는 차드관광청은, Guett의 말을 빌리면

세계에서 가장 궁벽한 응앵가 세리르의 거주지에 서자, 틸리 호의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갈대로 덮인 담수호는 아니다. 반대로 틸리 호의 증발 속도는 아주 빨라서 호수는 초염수가 되었으며 수심은 2, 3 m밖에 되지 않는다. 호수 중에서 가장 해발이 낮다. 

해발이 다르다 보니 근처 호수에서 반침투성 모래언덕을 통해 틸리 호로 조금씩 물이 흘러간다. 이렇게 "증발 펌프" 현상이 일어나다 보니 다른 호수들도 지하의 대수층에서 물을 끌어와 손실을 보충한다. 다른 호수들은 이렇게 물을 보충받는 데다가 원래 깊고 갈대로 덮여 있어서 담수호로 유지되는 것이다.  

이 두 호수는 옛날에는 아주 컸다. 한때 남부에 오늘날 카스피해보다도 더 컸다는, 지구상에 존재했던 내륙 호수 중 가장 컸다고 하는 Mega-Chad가 있었는데, 이 두 호수가 컸을 당시 그곳에 물을 공급했다고 한다. 


"임무는," Baba는 말한다. "규조토 표본을 채취해 여러 시대에 걸쳐 호수면 높이가 어떻게 변했는지 보는 것이다." 

규조토는 호수와 바다 바닥에 있는 단세포 식물인 규조의 껍데기가 모여 이룬 가벼운 토양이다. 규조 토양은 호수 물이 빠질 때 호수 분지를 둘러싼 사암 경사면 벽에서 볼 수 있다. 규조토 표본을 채취하면 각 퇴적 지층의 해발을 알 수 있고, 탄소 연대를 측정할 수 있다. 당시 호수의 깊이를 추정하고 "실제 범람" 컴퓨터 모델을 써서, 이론적으로는, 시대별로 "고호수"의 넓이를 투사할 수 있다.

Kröpelin은 응앵가 세리르의 에뎀 호(Lake Edem) 근처의 야자 숲을 돌고 사암 경사면의 가파른 골짜기를 오른다. 습기 시대에는 작은 시내가 흘렀을 것이다. 에뎀 호를 보게 해주는 튀어나온 바위는 완전히 갈대로 덮였다. 

우리는 Stefan Kröpelin에게
우리는 "Stefan Kröpelin에게 [오른쪽] 빚이 있다." Baba (왼쪽)는 말한다. "이 호수들이 어떻게 기능하는지 정확히 안다." 그는 말한다. "그럴 수만 있다면 당연히 [천공을 하고 분석을] 할 것이다. 그러면 차드의 발견이 될 것이다." Kröpelin은 Baba가 "믿을 수 있는 십년지기"라고 한다.

Kröpelin은 메모를 한 뒤 지질학 망치를 꺼내 규조토 표본을 쪼아 낸다. "내가 지구가 생긴 이래로 여기서 표본을 채취하는 최초의 인간일 것이다." Kröpelin이 말한다. 껍질을 문질러 벗긴다. 그러자 퇴적층 토양은 견디지 못하고 바스러진다. 팠던 구멍에 손을 넣어 하얀 규조 토양 덩어리를 꺼낸다. 연약해서 손에서 잘 부스러진다. 

탄소 연대를 측정하지 않고는 연대를 알 수 없지만 그는 "6,000, 7,000년보다 덜 오래 되었을 것"이라고 한다. 다른 표본들은 8,500년에서 9,500년 전의 것들이다. 플러스마이너스 10 m 오차는 있겠지만, 고도계를 보니 해발 405 m이다.  

관광청의 Fati Dadi는 좀 덜 과학적이기는 하지만 더 열정적으로 고대 호수 퇴적층의 다른 부분에서 햇빛에 바랜 연체동물 껍데기를 긁어 Kröpelin에게 가져온다. "목걸이를 만들려고." 그녀의 말이다. "바늘로 구멍을 뚫는다. 독창적인가?(C’est originale?)" Kröpelin은 웃는다. "만 년 된 것이다." 그는 말한다. "돈으로 살 수 없다."

부쿠 호 쪽으로 돌아와 낙타떼를 지난 랜드크루저 세 대의 우리 작은 대상은 얼마 안 있어 물가에 닿는다. 하루의 막바지 더위가 조금 누그러지지만 차에서 내린 우리는 맑은 물에서 헤엄치고 싶은 유혹에 끌려 하나 둘씩 호수로 뛰어든다. Kröpelin은 마지막에 여기 들어갔을 때 주혈흡충병에 걸렸다. 주혈흡충은 열대지방의 수중 기생충이다. 그러나 진정한 사막 모험가답게 그는 소리친다. "위험을 무릅쓰지 않으면 재미도 없다!" 그리고는 다이빙한다. (네 달 뒤에 다시 그 병에 걸려 또 치료한다고 연락이 왔다). 

응앵가 케베르에서 가장 큰 호수인 요안 호의 암녹색 물가로 엄청난 모래바람이 불어 온다. 이곳의 민족인 Toubou족 한 무리가 야자수 아래 그늘에 자리잡는다. 누군가 경치를 디자인하는 사람이 이들을 거기 갖다 놓은 것 같다. 이제 보니 그 중 한 사람은 Baba이다. 그에게 가서 사막과 연구소 중 어디가 편한지 물었다. 

"연구소가 좋다. 내가 일하는 곳이니까," Baba는 부드럽게 말한다. 그러다 갑자기 하던 말을 끊는다. "서로 보충한다고 할 수 있다. 사막이 좋기는 하지만 사막에서 연구해 얻은 결과를 처리할 연구소가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문제는," 말을 잇는다. "지금 차드에 이런저런 기관, 대학이 생겨서 식자 엘리트, 핵심 연구 인력은 양성했지만 정작 연구소는 없다."  

응앵가 세리르의 갈대 융단으로 덮인 에뎀 호를 배경으로, 한때 물에 잠겼던 햇볕에 바랜 갈색 사암에서 미생물 화석 표본을 구할 수 있다. 탄소 연대를 측정하면 시대별로 호수의 넓이가 어떻게 달라졌는지 알 수 있다.
응앵가 세리르의 갈대 융단으로 덮인 에뎀 호를 배경으로, 한때 물에 잠겼던 햇볕에 바랜 갈색 사암에서 미생물 화석 표본을 구할 수 있다. 탄소 연대를 측정하면 시대별로 호수의 넓이가 어떻게 달라졌는지 알 수 있다.

아직 말하고 있을 때 탐사대 지원팀은 차드 사람들이 초염수 호숫가에서 천연소금 거품을 챙겨 플라스틱병에 담는다.  Kröpelin은 나중에 그것이 천연소금 거품이라고 했다. "먹으면 안된다." 차드인은 강장제로 쓴다고 덧붙이면서 말한다. 

그러나 요안 호 바닥에 있는 것은, 응앵가가 과학에 줄 수 있는 가장 큰 것을 품고 있을 것이다. "롱 코어(역주: 광물, 지질학에서 말하는, 시추기로 채취하여 긴 원통형으로 만든 흙, 광물 표본 덩어리)" 그 말을 하는 Kröpelin의 목소리는 전설 속의 보물을 찾는 듯한 사람 같다. 

그는 몇십 년 동안 수단, 이집트, 리비아에서 이제는 말라 버린 고호수를 돌아다니며 사하라 동부의 환경과 기후 역사를 재구성하려 한다. 그러나 호수들은 오래 전에 말랐기 때문에 별로 건질 수 있는 것은 없다. "지난 4,000년 동안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거의 모른다." 그의 말이다.

그의 희망은 현재의 물에서만 가능한, 퇴적 진행 중인 퇴적층을 찾는 것이다.  

관광청의 Fati Dadi는 5,000년에서 11,000년 된 아프리카 습기 시대의 유물인 조개를 손에 들고 목걸이를 만들 것이라 한다.
관광청의 Fati Dadi는 5,000년에서 11,000년 된 아프리카 습기 시대의 유물인 조개를 손에 들고 목걸이를 만들 것이라 한다.

Kröpelin은 1999년에 중력천공기를 써서 요안 호 바닥의 퇴적층을 0.5 m 굴착했다. 시험적으로 해 본 일이었는데 엄청난 시간이 들었다.

"아무것도 없을 수도 있었다. 모래만 나올 수도 있었다. 온통 똑같은 모래만 나와서 아무것도 못할 수도 있었다." Kröpelin은 회상한다. 그러나 그렇지 않았다. 지하의 코어는 1년이 채 안되는 기간을 단위로 쌓인 것이었다. 그래서 퇴적층을 1년이 아닌 계절별로도 분석할 수 있었다.

"이쯤되면 분명 이렇게 크게 천공을 한 보람이 있는 것이다."

그는 2004년에 6.5 m 코어를 채취해 최근 6,000년의 연속적인 고환경 기록을 보여주었다. Kröpelin은 그렇게 길고 가는 원통형 코어를 분석하여 가장 연속적인 아프리카 홀로세 기후 사건 - 그린사하라의 소멸 - 을 과학적으로 이해한다고들 생각하는 것은 "처음부터 완전히 틀렸다"고 한다.

Kröpelin은 2008년에 연구 논문에 코어 퇴적물의 꽃가루를 분석한 결과를 인용하여 deMenocal이 제기한, 북아프리카가 사바나에서 사막으로 변하는 데 겨우 몇 백년밖에 걸리지 않았다는 가정을 반박했다. Kröpelin은 새로 발견한 자료로 보아 그 변화는 점진적으로 이루어졌으며, 몇 백년이 아닌 몇 천년이라는 훨씬 더 긴 시간이 걸렸음이 분명하다고 한다. 

이것은 단순히 학문적인 것이 아니다. 사하라의 기후 역사를 정확히 연구하는 것은 오늘날 기후 모델을 설정하는 사람들에게 중요하다. 이들이 "모델 튜닝을" 잘 할수록 현재에서 미래에 어떻게 기후가 변할지를 잘 예측할 수 있기 때문이다. 

DeMenocal은 Kröpelin의 분석이 "말할 수 없이 중요하지만" 그가 내놓은 자료는 지리학적으로는 그저 "한 측정기준점"의 것으로밖에 볼 수 없다고 한다. 그는 또 대조적으로 "아프리카 서부에서 동부에 걸쳐 측정기준점이 20개 정도 있는데 거의 모두 아프리카의 뿔(역주: 소말리아를 비롯해 아프리카 내륙에서 홍해로 튀어나온 여러 나라들)에 있으며 거의 모두 비슷하다고 한다. 5,000년 정도가 지난 뒤 다 갑자기 말랐다. 그러니, 그 중 어느 것인가? 둘 다인가?" 그는 덧붙인다. "솔직히 우리도 아직 모른다."

응앵가 케비르의 읍사무소에서 읍장 Aahmat Moussa Thozi를 만났다. 과학자들만 이 역사에 관심이 있는 것이 아니다. Aahmat는 통역을 통해 부족 기원의 전설을 들려준다. 

"이 호수 옆에 살던 민족은 아주 오래 전 사람들이었다. 우리 조상은 호수에서 나왔을 것이다. 호수에서 나온 사람들이니 호수와 연결된 것이다. 야자수, 대추야자, 멋진 호수가 있는 이곳은 아주 아름다운 곳이다. 응앵가에는 15씨족이 있다. 그렇게 시작했다." 

이들이 지질학적 역사의 수수께끼를 풀 수 있는 열쇠인가? 지질신화적 조사가 없이는 확실히 알지 못하리라. Toumai가 죽은 뒤 7백만년이 흐른 이곳에서 "고대"라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여기서는 습했던 기간이 수백 번있었고, 이른바 아프리카 습기 시대라는 것은 그 중 최근의 것일 뿐이다. 그 최근의 것이 중요한 이유는 해부학적으로 현대 인류에게 직접적인 영향을 끼치기 때문이다. 미래의 실마리를 줄 것이다.

Aahmat는 말을 잇는다. "우리 가족은 호수에서 나왔다. 나는 그 후손이다." 

그 뜻은 이런 것이다. 부족은 호수에서 생명력을 얻는다. 그 시작이 언제인지는 다른 문제이다. 그것이 과학의 영역이 될 것이다. 

응앵가 케비르 호수 군락 중 가장 큰 요안 호에서 사람들이 아침 그늘로 찾아든다.  갈대가 거의 없고 증발 속도가 기록적으로 빠른 이 호수는 염수호이다. Kröpelin, Melles, Karls는 2010년에 이 호수 바닥에서 10,94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코어 표본을 채취했는데 아직 그것을 갖고 연구하고 있다.
응앵가 케비르 호수 군락 중 가장 큰 요안 호에서 사람들이 아침 그늘로 찾아든다. 갈대가 거의 없고 증발 속도가 기록적으로 빠른 이 호수는 염수호이다. Kröpelin, Melles, Karls는 2010년에 이 호수 바닥에서 10,94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코어 표본을 채취했는데 아직 그것을 갖고 연구하고 있다.

Kröpelin은 2010년에 쾰른대학교에서 고기후학 그룹의 일원이 되었다. Martin Melles가 이끈 이 팀에서 그는 호수 퇴적 지층을 분석하느라 극지방까지 끌려갈 뻔했다.  

 "사실 열대 사막에서 얻을 수 있는 것은 별로 없다." Melles는 말한다. "사하라는 남극만큼이나 멀다." 

요안 호에서 천공기를 돌려 땅을 파는 일은 거의 Melles 아래에서 일하면서 고기후학 박사 과정을 밟는 Jens Karls의 몫이다. "로프로 감은 30 kg짜리 기계를 끌어올렸다가 아래로 내리고, 다시 올렸다가 내리고, 계속한다. 표면 퇴적층은 잘 파지지만 조금 더 단단한 곳에 이르면 한 번에 1 mm도 나가기 힘들다." 그의 말이다. 

1 mm는 1년 동안 쌓이는 퇴적물보다 더 얇다. 팀은 홀로세의 새벽부터 지층을 16 m 파내려갔다. 그 뜨거운 사막에서 그 무거운 천공기를 부딪히고 또 부딪힌다. 노출된 수면에서 반사되는 햇빛은 무자비하다. 팀은 섭씨 50도를 오르내리는 이곳에서 속도를 높인다. 마침내 목표에 이르렀다. 10,940년 된 연속적인 "기후와 환경 변화의 대륙적 수준의 기록" 

"기후 시스템이 과거에 어떻게 기능했고 앞으로 어떻게 할지" 알기 위해서는, Melles는 말한다. "전 지구에 퍼진 이 지질학적 고대 자료가 있어야 한다." "사하라 동부를 대표하는 코어 하나를 얻었으니 큰 진전을 이룬 것이다."

"롱 코어"는 아직 분석 중이지만, Kröpelin은 말한다. "진짜 지구적인 기후 사건의 증거를 찾았다." 그에 따르면 이는 "상대적으로 최근의 것인 대추야자의 흔적을 통해 [그리고] 적어도 파라오 이집트의 역사를 아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아프리카 대륙의 기후 역사에서 이제껏 본 것 중 가장 해상도가 높은 사진"이라고 그는 단언한다.

Baba도 동의한다. "우리는 Stefan Kröpelin에게 빚이 있다. 그는 중요한 국제 과학학술지에 기고해 주었다. "이 호수들이 어떻게 기능하는지 정확히 안다." 그는 말한다. "그럴 수만 있다면 당연히 [천공을 하고 분석을] 할 것이다. 그러면 차드의 발견이 될 것이다."

바람에 날려 오는 모래가 끊임없이 응앵가의 호수들의 모양을 바꾸고 갉아먹는다. 이렇게 비행기를 타고 요안 호 너머 남서쪽을 보면 북동쪽에서 불어 오는 harmattan 바람이 강력한 힘을 발휘하여 호수를 조각하는 것이 보인다. 
George Steinmetz
바람에 날려 오는 모래가 끊임없이 응앵가의 호수들의 모양을 바꾸고 갉아먹는다. 이렇게 비행기를 타고 요안 호 너머 남서쪽을 보면 북동쪽에서 불어 오는 harmattan바람이 강력한 힘을 발휘하여 호수를 조각하는 것이 보인다. 

응앵가 케비르의 요안 호에서 다소 떨어진 Eguibechi로 왕복을 했다. Kröpelin은 마을로 들어가는 길에 길바닥에 튀어나온 규조 토양을 찾아냈다. GPS로 위치를 기록하기까지 했지만 운이 없다. 마지막으로 한 번 더 온 길을 되짚어 본다. Kröpelin이 찾던 것은 아니었지만 내가 언덕 너머에서 길바닥이 하얀 것을 발견했다. 

가까이 가서 보고 Kröpelin은 뛸듯이 기뻐했다. 그리고 즉각 일에 착수했다. Baba가 몸을 숙여 그가 하는 일을 본다. "지금 진짜 새 발견을 보고 있는 것이다." Kröpelin은 말한다. "오랫동안 이런 곳에 오고 싶었다. 호수에서 건진 코어의 정보를 분석하려면 정말 이것이 필요했는데, 이제는 퇴적 당시 호수의 깊이와 관련해 정확한 분석을 할 수 있게 되었다."

Kröpelin의 설명에 따르면 우리가 보는 것은 다름아닌 원시 고호수의 물가인 것이다. "이 근경은 원시 갈대의 뿌리이고, 어떤 곳에서는 아직 호수 물이 얕았던 때 자라던 나무가 발견되기도 했다." 그는 여기의 것들은 약 8,000년 전의 것이라고 한다. 

"고대 호수 바닥에서 가장 많이 노출된 퇴적층을 본 것이다." 여기 고대 호수의 크기가 오늘날 크기보다 "50에서 100배 - 단순한 배수가 아닌 등급 배수로 - 는 더 컸다는 증거가 있다. 쉽게 말해서, 그린사하라 시대에는 지금 보이는 모든 땅이 물이었다는 말이다." 

Kröpelin은 퇴적물을 비닐봉지에 담는다. 그리고 새 발견물에 W76이라고 라벨을 붙인다. 

바람이 몰아쳐 Kröpelin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이렇게 오아시스를 보면 가느다란 은빛 조각과 푸른 야자잎, 하늘빛이 비치는 호수가 희미하게 보일 뿐이다. 

Baba가 다가와 내 어깨에 팔을 두르고 내 몸을 돌려 모래땅을 보게 한다. "응앵가에서는 사막의 미를 볼 수 있다." 그의 말이다. "그러나 이 호수들의 신비를 밝히려면 아직 과학 연구를 계속해야 한다."

Sheldon Chad 차드에서 그를 맞은 사람들에게 유머 감각이 풍부했던 덕분에, 상을 받은 캐나다 작가이자 사진사인 Sheldon Chad (shelchad@gmail.com)는 탐사 기간 중 "Wardougou" 차드, "고국을 사랑하는 사람" 차드라는 별명을 얻었다. 그는 다음의 이유에서 자기 별명은 아주 잘 지은 것이라고 한다. "잊지 못할 사하라 풍경의 아름다움보다 뛰어난 것은 우아하고 관대한 그곳 사람들뿐이다." 지금 브뤼셀에 살고 있다.

차드 북부의 가장 궁벽한 마을 두 곳 중 하나는 응앵가 케비르의 가운데에 있으며 이곳의 지도자는 Aahmat Moussa Thozi, 다른 하나는 응앵가 세리르의 오른쪽에 있고 이곳 지도자는 Nebe Guett이다. 이곳을 통해 전설적인 부족의 역사가 오늘날 과학으로 이어진다. 차드 북부의 가장 궁벽한 마을 두 곳 중 하나는 응앵가 케비르의 가운데에 있으며 이곳의 지도자는 Aahmat Moussa Thozi, 다른 하나는 응앵가 세리르의 오른쪽에 있고 이곳 지도자는 Nebe Guett이다. 이곳을 통해 전설적인 부족의 역사가 오늘날 과학으로 이어진다. c 관광청의 Fati Dadi는 5,000년에서 11,000년 된 아프리카 습기 시대의 유물인 조개를 손에 들고 목걸이를 만들 것이라 한다. 관광청의 Fati Dadi는 5,000년에서 11,000년 된 아프리카 습기 시대의 유물인 조개를 손에 들고 목걸이를 만들 것이라 한다.

This article appeared on page 12 of the print edition of Saudi Aramco Worl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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