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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허난성 카이펑에 위치한 대사원 입구에 있는 목판 위의 그림. 용, 물고기, 새, 모란 및 연꽃 및 행운에 대한 상징을 포함한 중국식 모티프 가운데 아랍어 캘리그라피가 있다. 발광다이오드(LED) 선이 기와 지붕을 지탱하는 서까래를 휘감고 있다. |
많은 숫자들로 유명한 지역에서는 100이라는 숫자가 겸손한 표현으로서의 어림수라는 것이 우리의 주의를 끌었다. 텍사스 또는 프랑스보다 더 큰 한 지역에 30,000개의 회교사원들이 있으며 그 중 중국의 중부 및 남방 전역에 걸쳐 남아있는 1700년 이전에 세워진 회교사원의 어림수가 바로 100이다. 우리는 그 중 가장 오래되고 잘 알려진 곳을 찾아서 고속도로와 시골길로 따라 여행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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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벽에 동그랗게 뚫린 공간은 입구인 동시에 그 너머로 보이는 전경의 틀 역할을 하며 중국에서는 월문(Moon Gate, 원형문)으로 알려져 있다. 이는 정원의 일반적인 특징으로 우리가 이 곳, 시안의 대사원의 벽에서 볼 수 있듯이 종교적인 건축 양식으로 사용되기도 했다. |
비하는 차원에서 우리는 더 많은 숫자들에 대해 알아보았다. 13억 이상의 중국 인구 중 1.8퍼센트, 즉, 2,300만명이 무슬림이다. 무슬림 인구는 10대 주요 소수민족 및 언어 집단으로 구성되며 한어를 사용하는 1천만명의 회족과 투르크계 언어를 사용하는 840만명의 위구르족을 포함한다. 나머지 무슬림 인구는 투르크계 언어를 사용하는 카자흐족, 키르기즈족, 사라족 및 우즈벡족, 그리고 몽골계 언어를 사용하는 둥샹족과 바오안족, 페르시아계 언어를 사용하는 타직족이다.
우리는 우리에게 허용된 짧은 시간 동안 중국에서 잘 알려지고 역사적으로 유명한 회교사원을 다루고 싶지 않았다. 여행 일정표에서 잠깐 둘러보는 중국의 우가청진사(Ox Street Mosque, 돼지가 아닌 소고기가 도축되는 무슬림 지역에 있어 붙여진 이름)와 시안의 대사원도 여기에 포함된다. 우리는 또한 관광객들이 즐겨 찾는 중국 동남부 해안의 오래된 항구 도시에 있는 명소들도 가지 않았다. 여기에는 광저우(이전의 광동)의 "회성사", 항저우의 "봉황사", 양저우의 "선학사"가 포함된다. 이 사원들은 해양 실크로드를 통해 중국에 도착한 회교 창시자들의 중국식 교리와 신화를 반영한 중국식 이름을 가지고 있다. 마침내 우리는 카슈가르와 중국 서부 지방의 다른 도시들에 있는 위구르인들을 위한 유명한 회교사원들을 제외시켰다. 그 사원들은 근처의 우즈베키스탄과 서쪽의 다른 나라들에 있는 회교사원의 건축 양식과 많은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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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맨 위: 우리가 방문한 첫 번째 회교사원인 서북 허베이성 쉬안화에 있는 청진사는 전형적으로 우리가 보았던 역사적인 회교사원뿐만 아니라 중국의 이 지방에서 전통적, 세속적, 종교적인 면을 모두 갖춘 복합체를 보여준다. 낮은 회당과 방으로 둘러싸인 중앙의 뜰, 나무로 된 골조, 살짝 높은 중앙 예배당, 돌과 벽돌로 두른 벽. 위 근래에 이르러 아랍어 캘리그라피카 미흐라브(prayer niche, 회중석), 배경 중앙의 상단에 보존되어 있는 간쑤성 톈수이의 베이관청진사와 같은 많은 역사적인 회교사원들이 보수 공사 중이다. |
우리에게 훨씬 흥미로웠던 것은 중국 중부 및 북방 지역에 있는 덜 알려지고 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은 역사적인 회교사원들이었다. 그 회교사원들은 이슬람식 요건을 충족하는 전통 중국 건축 설계를 기반으로 적용, 개조, 건축되었다.
우리가 베이징에서 만난 후 얼마 있지 않아 운전기사가 우리를 재빨리 베이징의 서북쪽에 있는 시허베이로 데려갔다. 3시간 동안 여행하는 중 우리는 쉬안화의 청진사를 방문하러 장자커우시에서 멈추기 전 만리장성을 언뜻 보고 지나쳤다. 근처 서점 밖 그곳에서, "앗살람 알라이쿰"(아랍어로 "알라의 평안이 당신에게 있기를")이라는 가벼운 인사를 알아듣고 미소지었으며 그 덕에 안쪽으로 초대되었다. 그 공간은 아랍어와 중국어로 된 꾸란, 서적, 우리를 초대한 주인이 새긴 캘리그라피 등으로 가득했다. 이 여행이 매우 매력적인 여행이 될 것이 분명했다.
실제로 다음 2주간의 육로 여행에서 황하 계곡을 통해 티베트 고원에서 구위안으로부터 시닝에 올라가기 위해 우리는 6명의 운전기사와 6대의 차를 사용했고 밤새 기차를 타기도 했다. (아래 지도 참조) 우리는 허베이성, 샨시성(Shanxi, 산서성), 간쑤성, 칭하이, 샨시성(Shaanxi, 섬서성), 후베이성, 허난성까지 총 일곱개의 성과 내몽고 자치구와 닝샤 자치구를 횡단했다. 이는 회족 인구가 많이 살고 있는 중국 중부, 북방, 북서쪽의 모든 지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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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왼쪽(사진)과 같이 간쑤성 린샤에는 18세기 중국 중부에 이슬람교를 소개하는데 크게 일조한 사람들의 매장지가 탑 같은 구조로 표시되어 있고, 예배와 가르침을 위한 건물들에 둘러싸여있다. 수수한 외관은 이 건물들이 학습과 학문의 역사적인 중심지임을 나타낸다. 오른쪽: 얕은 돋을새김 프레스코화가 전통적인 중국식 성곽으로 중앙에 둘러싸인 복합 건축물을 묘사하고 있다. |
중국의 많은 회교사원들은 긴 역사를 가지고 있다고 하지만 건물들이 얼마나 오래되었는지 확인하는 것은 대체로 어렵다. 1976년 마오쩌둥 주석이 서거할 때까지 지속된 20여년간의 문화대혁명 중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에 대해 말하고 싶어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 시기 동안 종교 활동이 감소하고 많은 종교 건물들이 압류되어 다른 용도로 사용되었다. 일부 장소에서는 아랍어와 중국어가 한쪽씩 각각 새겨진 비석(직각의 납작한 돌)이 지난 몇세기에 걸친 회교사원의 역사를 알려주지만, 대부분은 1700년대 이후의 것들이며 종종 현대적으로 재건축, 수리 및 가칠을 거쳤으며, 정확한 것부터 오래된 디자인에 이르기까지 굉장히 다양하다. 사실, 간쑤성 톈수이의 베이관 청진사는 그러한 보수의 중심에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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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왼쪽: 닝샤 자치구 구위안의 복합건물로 들어가는 입구는 전형적인 이슬람식과 중국식 건축학적 장식이 결합되어 있다. 외관 장식은 꽃, 과일, 새, 실제 동물과 신화 속 동물들을 포함하여 아랍식 및 중국식 텍스트와 모티프와 대조를 이룬다. 환상 속의 동물들의 모양을 한 둥그렇게 말린 전통적인 중국식의 초록색 타일 지붕이 위를 덮고 있다. 맨 위 오른쪽: 왼쪽을 보면 최근 건설된 뾰족탑과 중국식이 아닌 회교사원이 린샤 거리에서 보인다. 한때 범아시아 실크로드 교역의 요충지였던 린샤에는 70개 이상의 오래되고 새로운 회교 사원이 있어 다른 중국 도시들보다 많은 수의 회교사원이 있다. 맨 아래 오른쪽: 칭하이성의 성도이자 티베트 고원에서 가장 큰 도시인 시닝의 전통 중국식 회교사원에 새로 장착된 판유리 창문들에 새로운 돔과 뾰족탑이 반사되고 있다. 이 돔과 뾰족탑들은 "국제적인 이슬람식" 스타일로 건설된 신식 회교사원이다. |
이는 무슬림들이 중국에 온 7세기경은 이슬람이 부흥한 직후였다. 그들은 주로 대사나 상인이었다. 그들은 중앙아시아를 통해 실크로드를 따라 육로로 들어왔고 말라카 해협을 통해 인도양을 건너 해로로도 왔다. 역사 자료에 따르면 651년 3대 칼리프 우스만을 대신한 특사가 중국 중부에 있는 장안에 위치한 당나라 궁궐에 방문했다고 한다. 이슬람이 중앙 아시아에 퍼지고 투르크족이 회교로 개종함에 따라 신장 서부에 있는 도시들은 10세기 초부터 무슬림 문화의 중요한 중심지가 되었다. 그러나 해안 도시에서 발견된 12세기 묘비들을 제외하고 중국 무슬림의 존재에 대한 첫번째 물리적인 증거는 오늘날 많이 재건축된 동남부의 14세기 회교사원에 뿌리를 두고 있다.
18세기와 19세기에는 아팍 호자(1693년 또는 1694년 신장 가슈가르 밖에서 숨졌다)를 따르는 무리가 간쑤, 닝샤와 중국 중부의 기타 지역에 이슬람을 전파했다. 제자들의 묘는 예배와 가르침을 위한 방들을 포함한 종교 단지의 중심이 되었다. 이 빌딩들은 이슬람식 요구를 충족하는 전통적인 중국 양식과 모티프를 적용했다. 그러나 그 방식은 서구 이슬람 지역에서 온 방문자들을 놀라게 할만한 것이었다. 예를 들어, 아랍어 캘리그라피뿐만 아니라 전통 중국식 형상과 구상주의적인 장면으로 많은 부분이 장식되어 있다. 간쑤성 린샤시는 그러한 건물들이 많이 모여있어 무슬림 학문의 중심지이자 도시 생활 중 조용한 오아시스 같은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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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맨 아래 오른쪽의 새로운 후이 문화 공원 입구는 나지아후 청진사(왼쪽)에서 얼마 멀지 않은 곳에 있다. 그러나 건축학적 모델인 인도 아그라의 타지마할(17세기에 무굴 제국 황제 자한기르가 세움)로부터 3000킬로미터(1865마일) 멀리 떨어져 있으며 건설 시기도 4세기나 차이난다. 이 문화 공원은 중국의 새로운 부와 이슬람 문화의 세계화를 반영한다. 맨 위 오른쪽: 닝샤 자치구 지역 용닝에 있는 나지아후 청진사는 발코니와 위로 향한 타일 지붕으로 전통 중국식 건축 양식을 반영한다. 그러나 최근 재건된 아치 모양의 입구와 회색 벽돌로 만들어진 두개의 측면 탑을 보면 측면에 뾰족탑이 대칭을 이루는 정문을 가진 중동의 이슬람 사원의 영향을 후에 받았음을 짐작하게 된다. 회교사원에 있는 계단 모양의 민바르(설교하는 연단)는 전통 이슬람 양식을 중국식으로 적용한 또다른 예이다. 그 뒤의 벽에는 중국식 모티프와 아랍어 캘리그라피가 비슷하게 결합된 무늬가 그려져 있다. |
오래된 것들도 있지만 그 중 새로운 것들도 많다는 것을 발견했다. 몇 세기 전, 중국 무슬림들이 서쪽으로 무슬림의 중심지인 메카를 향해 순례(the Hajj)하기 위해 족히 2년은 걸리는 긴 여행을 떠나는 것은 아주 어려운 일이었다. 오늘날 중국 무슬림은 그 어느 때보다 중국 내 성지뿐 아니라 더욱 세계의 다른 성지와 관련되어 있으며 이것의 건축학적 결과는 다음과 같이 더욱 명백해지고 있다. 오래된 회교사원들은 환히 빛나는 새로운 사원들과 짝을 이루고 있다. 새로운 회교사원들은 종종 해외에서 자금 지원을 받으며 뾰족한 초록색 돔과 날씬하고 높은 뾰족탑이 특색을 이루어 중국에는 없는 "국제적인 이슬람식"이라고 할 수 있는 스타일로 설계되었다. 우리는 두드러진 한 예로서 전통적인 나지아후 청진사가 인도의 타지마할에 영감을 받아 설계된 후이 문화 공원 근방에 있는 닝샤 용닝에서 중국 고유의 설계와 외국에서 들여온 설계가 병치되어있는 것을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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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허난성 카이펑에 있는 주셴청진사(왼쪽)의 벽돌로 지어진 외벽과 타일 지붕의 단 위로 직사각형의 목조 기둥 및 대들보가 있는 구조는 시닝 근방의 티베트 고원 러두의 승당에 있는 예배당(오른쪽)과 조금 다르다. 회교사원에서 두개의 작은 부속건물이 양 길가에 있다. 이는 북과 종을 울리는 탑이 될 수 있는 불교식 장소이다. 여기에는 사원의 역사를 연대순으로 기록한 석비 또는 직각 석판이 있다. |
중국식 디자인을 사용하지 않은 새로운 회교사원들은 매우 전통적인 건축 양식 문화 내의 극적인 예로 이 변화는 몇천년에 걸쳐 세속적인 건물과 종교적인 건물 등 모든 종류의 건물들에 일반적인 디자인 원리를 꾸준히 적용해왔다. 통치자와 다른 권력자의 궁전들은 단순히 매우 큰 집으로 처음에는 불교사원, 도교사원, 유교사원으로 사용되었다가 나중에는 회교사원으로 사용되었다. 결과적으로 놀라울 정도로 많은 숫자의 중국식 건물들이 서로 흡사하게 닮게 되었다. 예를 들면, 9세기의 불교사원, 13세기의 도교사원, 15세기의 회교사원, 16세기의 장례식장, 17세기의 유교회당, 19세기의 거주지는 모두 명백한 유사점들을 보여줄 것이다. 우리가 도시와 회교사원들을 다닐 때마다 가지게 되었던 한가지 질문은 어째서 중국식 건축 양식의 특징들이 그렇게 다양한 목적으로 수천년 동안 많은 지리학적 및 생태학적 영역에 걸쳐 나타났을까 하는 것이었다. 건물의 크기와 재료의 질이 구조의 상태와 지원금의 차이를 나타내었을 때 그것은 때때로 목적의 차이를 나타내는 것이 아니었다.
이 질문에 대한 간단한 답은 바로 유연성이다. 이 유연성은 14세기부터 20세기까지의 회교사원 건축 양식에서 전형적으로 나타난다. 사원들은 모두 나무로 만들어진 버팀대가 지지하고 있는 목골 구조를 사용하여 지어졌고. 도자기로 만들어진 기와가 지붕을 구성한다. 직사각형 안뜰에서 수평축을 따라 체계적으로 배열된 건물들은 벽돌로 만들어진 담을 뒤로 하고 정문은 남쪽을 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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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근에 복원된 샨시성(Shanxi, 산서성) 북부 따통의 18세기 회교사원의 입구 옆에 있는 두 개의 3층 탑은 최근 보편화된 비중국식 이슬람 상징으로써 현지화된 것이다. 탑 꼭대기에는 초승달 장식이 있고 처마에는 중국식 종이 달려있다. |
그러므로 전통적인 중국식 궁궐이나 사원의 배치를 회교사원으로 바꾸는 것은 종종 복합건물을 중국에서 정서 방향에 있다고 널리 알려진 메카를 향해 일직선으로 향하게 한 것이다. 기도 회당은 일반적으로 주요 건물이다. 복합건물 중앙에서 연단이나 주추에 위치하며 이는 중국에서는 독특한 관례이다. 안뜰의 담을 따라 교실, 사무실 및 목욕탕 같은 부속 건물뿐만 아니라 직원, 학생 및 여행자를 위한 주거 공간이 모여있다. 일부 이슬람 지역에서는 주로 마드라사 (교리학교), 쿠타브 (초등학교), 하나카(호스피스), 이마레트(무료급식소) 같은 건물들이 별개로 또는 인접한 곳에 위치한다. 종교 지도자들과 방문객들을 위한 이러한 교육, 행정, 주거 구역은 놀랍게도 중국 불교 건물과 도교 건물에서 나타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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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통 중국식 틀 안에 담긴 아랍어 캘리그라피(왼쪽)는 회교사원의 담을 장식할 때 사용되며 이곳에서는 카이펑 대사원 입구에 있다. 부드러운 선은 전형적인 중국어 캘리그라피이며 이슬람 지역에서 사용되는 갈대 펜보다는 일반적으로 붓을 사용하여 만들어졌다. 가운데: 일반적으로 사원 안뜰의 중심에 위치한 탑 같은 구조의 왕위에로우("망월루")는 뾰족탑이 아니다. 오늘날 칭하이성 쉰하에 있는 망월루에 설치된 확성기가 그러한 목적으로 적용되어 왔음을 보여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오른쪽: 중국 전통 건물의 지붕은 일반적으로 도자기로 만들어진 반짝이는 기와로 덮여있다. 끄트머리의 선과 용마루를 따라 식물과 꽃 모티프뿐만 아니라 용과 불사조 같은 환상 속의 동물들이 장식되어있다. 일부 원기둥형 기와의 끝 부분은 아랍어로 글이 새겨져있고 다른 타일에는 용이 그려져있다. 이런 모든 특징들은 허난성 친양시의 대사원의 지붕 위에서 결합되어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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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몽고 자치구 수도인 후호하오터의 회교사원 밖에 있는 과자점에서 기호들이 주로 중국어로 적혀있지만 작은 타원 안에 아랍어로 할랄 식품(무슬림이 먹을 수 있는 음식)이라는 것이 적혀있었다. 그러나 타원 안의 아랍어 문자는 중국어처럼 분리 문자로 다르게 적혀있었다. |
점점 눈에 띄지 않는 이 전통적인 중국식 건축 양식 체계는 불교 유적을 포함한 상징적인 산인 인도 불교 사리탑의 중국식 버전인 탑과 거리가 멀다. 일부 장소에서 중국 건축가들이 회교사원 안뜰 중앙에 위치한 탑을 왕위에로우("망월루")로 만들어버렸지만 기도 시간을 알리는 회교사원에 인접한 뾰족탑은 전통적인 중국식 회교사원에서 필요한 부분이 아니었다. 이는 기도 시간을 알리는 것이 아니라 회교사원의 출입구에서 전자 기기 증폭이 수행하는 데 사용되었으며 아직도 때때로 수행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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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국식 전통 건축 양식은 주로 목재 기둥과 대들보에 기반을 두고 있으며 일반적으로 아치를 사용하지 않는다. 그러나 회교사원에서 메카를 향하는 담에 있는 회중석인 미흐라브는 오래 연결된 아치를 가지고 있다. 이 예외적인 회교사원은 이 새로운 모양을 중국식 회교사원에 소개했다. 왼쪽에서 오른쪽: 닝샤(Old Wang Mosque), 통신의 미흐라브, 딩샹(아래 왼쪽). 아래 오른쪽: 딩샹에 위치한 그림이 그려진 목재 대들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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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오딩과 카이펑(주셴청진사) |
대부분이 건조한 기후인 이슬람 세계에서는 나무가 부족하여 건축가들이 벽돌과 돌을 선호했지만 중국에서는 항상 목재가 풍부하게 사용되었다. 궁궐, 사원 또는 회교사원을 위한 전통적인 중국식 목재틀을 가진 건축 양식은 수평 대들보를 지지하는 목재 기둥에 의존하여 서까래와 지붕을 지지한다. 이러한 요소들은 버팀대와 함께 장부맞춤을 사용하여 연결된다. 즉, 못이나 나사가 필요하지 않다.
이 수공예는 14세기에서 17세기 사이에 복잡하게 발전했다. 14세기 건물에서 2겹 또는 3겹의 "팔"로 이루어진 버팀목은 17세기에 들어 아홉개의 다른 각을 가진 각도를 따라 5겹에서 7겹으로 모아졌다. 결국 버팀목들이 가깝게 모여 무까르나에 상응하는 중국식 버팀목으로 보일 수 있다. 무까르나는 부하라에서 그라나다에 이르는 변화무쌍한 종무석 같이 생긴 모티프로 이슬람식 건축 양식을 꾸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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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칭하이 황하강 상류의 홍수이취안 청진사는 중국 중부에서 가장 잘 보존되고 가장 좋은 기억을 불러일으키는 회교사원이다. 오른쪽의 입구 회당은 전통적인 중국식 목재틀 건축 양식의 매우 분명한 예이다. 모든 기둥, 대들보와 지지 버팀목들이 장부맞춤을 사용하여 서로 잘 맞춰져 있어 못이나 나사가 필요하지 않다. |
건축을 위해 나무가 가장 중요한 재료였던 반면 벽돌은 외부, 건물의 나눠진 담을 위해 특징적으로 사용되었고 도자기로 된 기와는 지붕을 위해 사용되었다. 전통적인 중국 건축가들은 아치와 둥근 천장을 사용하는 법을 알고 있었지만 그들은 지상의 건축물이 아닌 지하 묘비에 가장 공을 들였다.
그러나 무슬림에게 아치는 종교적으로 특별한 중요성을 가지고 있다. 초기 이슬람 시대에 소개된 미흐라브 또는 회교사원에서 메카를 향하는 담(카바)에 있는 회중석은 변함없이 아치형을 택했지만 오늘날에는 다양한 형태를 보인다. 북아프리카, 중동 및 중앙아시아에서는 나무가 부족하기 때문에 장소를 덮는 일반적인 기술은 벽돌 또는 돌을 사용한 둥근 천장이었다. 둥근 천장은 아치형만큼 둥글지 않고 길이는 더 길다. 우리가 보았던 일부 목재틀 회교사원에서는 아치와 둥근 지붕이 건물의 가장 중요한 부분(미흐라브 앞의 구역)에 벽돌로 만들어졌다는 것을 나타냈기 때문에 중국의 무슬림들도 이슬람식의 둥근 지붕을 가지는 것처럼 보였다. 이러한 유형의 건축물은 중국에서 "대들보 없는 회당"으로 알려져있다. 다른 경우, 사실 목재 건축물은 구조적으로 기둥과 대들보에 의존하는 것을 포기하지 않고 돔형의 공간을 모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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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왜냐하면 중국식 건축 양식은 몇천년에 걸쳐 유지되었으며 건물 하나를 마주하는 방법은 지붕을 지지하는 버팀목인 "버팀대"의 복잡성을 보는 것이다. 후기 건물로 갈수록 더욱 복잡한 버팀대들이 있었다. 홍수이취안 청진사의 버팀대들은 18세기 또는 19세기의 것이다. 오른쪽: 홍수이취안 청진사에는 매우 정교하게 새겨진 판자와 돔을 연상시키는 정교한 목재 천장이 덮고 있는 작은 네모난 공간에 미흐라브가 서있다. |
우리가 보았던 회교사원들의 장식들은 전통적인 이슬람식 모티프(캘리그라피, 기하학적인 식물 장식)와 전통적인 중국식 모티프(모란, 연꽃, 용 및 불사조)가 비슷하게 결합되어 있다. 회교사원 또는 시장에서는 아랍어 문구의 사용이 무슬림과 중국의 무슬림 간의 명백한 차이를 나타낸다.
중국의 아랍어 캘리그라피는 다른 이슬람 지역에서 사용되는 갈대 펜보다는 종종 붓으로 글을 쓰는 중국의 오랜 전통을 반영하는 매우 부드러운 선을 보여준다. 식물과 꽃 장식의 경우 두 전통 간에 겹치는 부분이 많지만 특별하게 중국의 경우 일반적으로 형상을 표현하지 않는 이슬람의 종교적 배경 속에 신화 속 동물들을 묘사하고 있다. 때때로 이러한 동물들은 수호자의 역할로 출입구 옆에 있거나 지붕 장식으로 사용되거나, 그렇지 않은 경우 새김 장식이나 그림 장식으로 통합된다. 비슷한 방식으로 일부 회교사원에서 무슬림들은 전통 중국식 향을 피운다. 일부 안뜰에서 아랍어와 중국어가 새겨진 큰 청동 또는 자기 그릇을 발견했다. 그 안에는 모래가 담겨있어 연기가 피어오르는 향을 지지해준다.
아마도 우리의 여행 중에 가장 놀라웠던 것은 매력적인 홍수이취안 또는 칭하이성 황토 고원 위에 높게 자리하고 있는 핑안의 청진사("Vast Spring")일 것이다. 우리는 그곳에 황하강 상류를 따라 시닝시에서 몇시간 동안 차를 타고 달려 도착했다. 우리는 중앙아시아 사막의 바람이 부는 황토 위에 세워진 작은 농업 마을을 천천히 달리면서 무엇을 기대해야 할지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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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홍수이취안 청진사의 관리인이 우리를 반겼다. 드물게 그림이 없는데 이는 얼마나 사원이 잘 보존되었는가를 강조한다. |
놀랍게도 이 먼 곳에 위치한 회교사원은 보존했다는 증거가 보이지 않았지만 상태가 매우 좋았다. 우리가 현대 중국에서 드문 적막 속에서 두 눈을 감고 뻐꾸기 소리에 귀를 기울였을 때 마치 이 아주 아름답고 정교한 목재 회교사원이 지어졌던 18세기나 19세기로 돌아간 것만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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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heila Blair(sheila.blair@bc.edu)와 Jonathan Bloom(jonathan.bloom@bc.edu)은 보스턴칼리지에서 Norma Jean Calderwood University Professorship of Islamic and Asian Art 교수직을 맡고 있으며 이슬람과 아시아 예술학부 버지니아 코먼웰스 대학교 이슬람 예술학부의 하마드 빈 칼리파 석좌교수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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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ncy Steinhardt(nssteinh@sas.upenn.edu)는 펜실베이니아대학교 동아시아 예술학부 학과장이자 교수이다. 그녀는 Edinburgh University Press의 근간 서적인 China’s Early Mosques의 저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