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ol. 64, No. 32013년 5월/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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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동기 시대의 바빌로니아 탄생설인 Enûma EliŠ에 따르면, 신 마르두크(Marduk)가 모든 땅이 바다였던 원시시대의 늪지에 흙과 갈대로 기반을 만들자 세상이 시작되었다고 한다. 이러한 곳은 불과 반세기 전까지도 존재했다.

1967년 10~11월, 운 좋게도 한 때 이라크 남부의 2만 제곱킬로미터를 뒤덮었던, 당시 세계에서 가장 훼손이 덜 된 지역 중 하나였던 늪지대에서 지낼 기회가 있었다. 믿기 어려울 때도 있지만 오늘날의 이라크는 한때 유라시아 세계의 중심이었다. 문명의 요람이었던 메소포타미아와 수메리아는 수천 년 전에 바로 이곳에서 발전했다.

메소포타미아는 "강 사이의 땅"이라는 뜻으로, 그 강은 티그리스 강과 유프라테스 강을 가리킨다. 두 강이 만나는 지점에 호수, 수로, 강, 섬, 숲, 키가 큰 갈대숲, 높이가 사람 키의 3~4배나 되는 나무 등과 함께 광활한 늪지대가 있다. 에덴동산(Garden of Eden)이 바로 이곳이었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다.

늪지대 너머 가장자리를 따라 Uruk, Ur, Larsa와 같은 수메르 옛 도시의 자취가 아직도 남아있다. 이러한 문명은 한 가지를 제외하고 모두 사라졌다. 늪지대엔 스스로 마단(Ma‘dan)이라고 칭하는 사람들이 살았다. 마단은 “평원에 사는 사람들”이라는 뜻으로 일반적으로 영어로는 마시 아랍(Marsh Arabs)이라고 알려졌다.

이들은 아랍어 방언을 사용하지만, 마단족 대부분은 수메르인의 직계 후손들일 가능성이 높다. 내가 방문했을 당시에 그들의 수는 25만~50만 정도였다.

마지막으로 늪지대 방문 허가를 받았던 서양인이 1950년대에 명작인 Marsh ArabsArabian Sands의 저자인 Wilfred Thesiger였다는 말을 듣고 내가 공식 허가를 받기는 어렵겠다고 예상했다. 실제로 3주나 걸렸으며, 바그다드의 시장이 직접 관여해준 덕분에 필요한 문서를 발급받을 수 있었다. 이라크 정부는 이미 늪지의 물을 빼내겠다고 위협하고 있었다. 그렇게 되면 고대의 생활 방식도 사라질 것이었다. 이러한 사실이 그곳에 가고 싶은 마음을 더욱 부추겼다.

원래 계획은 시장이 있는 작은 마을인 Majar al-Kabir부터 가이드와 함께 늪지에서 사용하는 대형 배를 타고 둘러보는 것이었다. 간단하게 배에는 나와 가이드를 포함해 카메라, 엽총 두 자루, 놀랍게도 현지 식료품 가게에서 발견한 노르웨이의 정어리 통조림 200개(현지 음식이 싫증 날 때를 대비)만 실으려 했다.

하지만 정부 당국은 만일을 대비해 무장한 군인도 한 명 데리고 가야 한다고 말했다. 난 마단족이 정부 관계자라면 누구든 질색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리고 군인이 있으면 자유롭게 작업하기 어려울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배는 바닥이 평평한 모터보트로 바꿔야 했는데, 배를 운전하고 안내자 겸 통역사 역할도 할 이브라힘이 함께 왔다. 이브라힘은 늪지에서 자랐으며 미국인 소유의 설탕 공장에서 영어를 배웠다. 우리와 동행한 군인은 나이가 지긋한 사람으로 주름진 얼굴이 친근해 보였으며 총도 그의 나이만큼 오래된 것이었다. 얼룩덜룩한 갈색 제복을 입은 그의 모습은 잔인함과는 거리가 멀었다.

이브라힘은 처음에 배 운전을 도와줄 조수가 필요하다고 했지만, 나는 그렇다면 나도 조수 사진사가 필요하고 군인도 조수가 필요할 것이라고 말하며 단번에 거절했다. 다행히도 그는 내 말에 크게 웃으며 곧장 시동을 걸고 Majar al-Kabir에서 진흙 같은 강을 따라 남쪽으로 늪지를 향해 출발했다.

때는 아름답고 시원한 이른 봄날의 아침이었으며, 이라크의 공적인 문제와 관련한 불만은 모두 끝났다고 생각하니 마침내 기분이 좋아졌고 앞으로의 모험이 기다려졌다.

행복한 기분은 오래가지 않았다. 출발한 지 얼마 안 되었을 때 우리 뒤쪽의 강기슭에 먼지가 이고 우리 쪽으로 지프 한 대가 달려오는 것이 보였다. 운전사는 경적을 계속 울려댔다. 차 속의 남자는 일어서서 미친 듯이 손을 흔들었다. 우리는 강기슭에 배를 멈추고 기다렸다.

차가 멈추더니 젊고 거무스름한 남자가 뛰어나왔다. 그는 싸구려 검정 양복에 흰색 셔츠, 검은 넥타이와 함께 광나는 검은색 구두를 신고 있었다. 주저하지 않고 어떤 설명이나 사과의 말도 없이 “Salaam alaykum”이라고 말하며 우리 배에 올라타 앉더니 담뱃불을 붙였다.

난 아무 말도 못 하고 그를 쳐다봤다. 그 사람은 모두가 두려워하는 이라크 비밀경찰의 비공식 제복을 입고 있었다. 그리고 재킷 안의 총이 불룩하게 튀어나왔다. 그렇게 그는 우리와 동행하게 되었다. 난 소용없다는 걸 알면서도 기분을 달래려고 일부러 크게 화를 냈다. 이브라힘은 어깨를 으쓱하더니 내게 이렇게 속삭였다. “마을에 도착해서 섬에 배를 대고 사람들에게 담배와 음식을 주고 배를 얻으면 당신의 일을 할 수 있을 겁니다.”

이브라힘의 계획은 그럴듯했고, 그 경찰도 처음의 긴장된 순간 이후엔 친근하게 다가오며 나중엔 내가 맘대로 작업하도록 놔두었다.

우리 일행이 다소 진정되고 서로 조금씩 알게 됐을 땐 진흙 같은 강을 지나 양쪽이 높은 갈대로 둘러싸인 좁고 깊은 맑은 수로에 들어서고 있었다. 일부는 7~8미터 정도로 매우 키가 컸다. 모두가 조용해졌다. 우리가 늪지대에 들어온 것이었다.

처음엔 배 엔진 소리와 보이지 않는 새들의 울음소리가 유일한 소리였다. 그러고 나서 저쪽에 몇 척의 배가 갈대 속에서 이리저리 움직이는 것이 보였다. 우리가 본 첫 마단족이었다. 그들은 갈대를 모으고 먹을 수 있는 식물을 채취하며 일부는 작살로 물고기를 잡고 있었다.

몇 명은 우리 일행 중에서 제복을 입은 사람을 보자마자 배를 돌려 달아났다. 이라크에서 2년 동안 의무 군 복무를 할 사람을 징집하러 온 줄 알았던 것이다.

곧 다소 의외의 방식으로 우리의 정체에 대한 소문이 빠르게 퍼졌다. 사람들은 우리가 단속하려는 경찰이 아닌 한 외국인의 사진 기행을 위한 일행이라는 것을 알게 되자 피하지 않았다.

수로가 넓어지고 우리는 늪으로 들어갔다. 오른쪽에 Al-Sahein이라는 마을의 갈대로 만든 집들이 보였다. 마을 우두머리가 우리를 맞이할 준비를 하는 동안 우리는 바깥쪽에서 기다렸다. 그것이 이 지역의 관습이라고 이브라힘이 말해주었다.

손님을 맞이하는 사람들은 불이 꺼지지 않게 하고, 담배를 몇 갑 모으고, 쌀을 요리하고, 여성들은 빵을 굽고, 닭을 한두 마리 잡거나 신선한 물고기를 모으고, 손님이 머무를 공간(mudhif)을 치우고, 바닥에 갈대로 만든 깨끗한 매트와 깔개를 깔았다.

난 기다리는 동안 마을을 자세히 관찰할 수 있었다. 오두막집은 각각 작은 섬에 있었고, 갈대 다발을 쌓아 만든 집도 있었다. 집은 옛날 방식으로 지었으며, 구조도 고대 수메르인들의 집과 비슷했다.

크고 작은 배들이 마을을 드나들었으며, 남자와 여자, 심지어는 어린 아이들도 노를 저었다. 오두막집들 사이로 늪지 사람들에게 꼭 필요한 거대한 물소가 수영하거나 떠다니거나 섬 위로 올라오려 애쓰고 있었다.

기원전 4000년경부터 수메르인들이 기르기 시작한 커다란 검은색 짐승은 우유, 요거트, 고기, 가죽을 제공했으며, 매우 중요한 것으로 똥은 연료로 사용했다. 갈대집의 바깥벽 전체에 똥 덩어리를 발라놓고 말렸다. 냄새는? 불쾌한 냄새는 전혀 나지 않았다.

마침내 mashuf(배)가 우리 쪽으로 오더니 나이 많은 남자 한 명이 우리 배로 올라타 모두와 악수를 하며 이렇게 말했다. “우리의 mudhif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우리는 예의상 정중하게 거절하며 그 사람에게 돌아갈 기회를 주었지만, 그럴 마음은 전혀 없었다.

그가 뜻을 굽히지 않자 우리는 기쁜 마음으로 그를 따라갔다. 그가 앞장서고 우리는 커다란 멋진 mudhif가 있는 가장 넓은 섬 중 하나로 갔다. 이라크 정부가 공식적으로 금지한 직책이지만, 마을의 우두머리(shaykh)는 우리가 배에서 내리는 것을 도와주고 널찍한 갈대집으로 안내했다.

우리는 신발을 벗고 안으로 들어갔다. 물론 불이 타오르고 관습인 아랍 커피가 준비되어 있었다. 우리는 모두 둘러앉아 관례대로 “안녕하십니까, 가족은 잘 있습니까, 농사는 잘됩니까, 가축은 잘 자랍니까?”라고 서로에게 계속 물었다.

늪지에선 대부분의 다른 아랍 세계에서와 마찬가지로 손님에게 쓰고 단 조미료를 넣지 않은 매우 진한 커피를 카더몬과 같이 대접한다. 보통은 남자 한 명이 작은 컵을 계속해서 채워주는 방식으로 대접한다. 한 번에 몇 방울씩 마시며 일반적으로 세 번을 마신 후에 이제 충분하다는 표시로 컵을 흔든다. 세 번쯤 마시면 카페인 때문에 정신이 번쩍 든다.

우리를 접대한 주인은 손님마다 앞에 담배 한 갑씩을 놓아주었다. 이는 이례적으로 후한 대접이라고 할 수 있다. 커피를 마신 후엔 매우 달콤한 차가 유리잔에 담겨 나왔고, 대화가 시작되고 차를 마시며 끝없이 담배를 피울 땐 대화가 멈췄다가 다시 시작되곤 했다.

마단족은 이러한 오랜 침묵을 전혀 신경 쓰지 않는 듯했다. 난 그러한 특징이 매력적이라고 느껴졌다. 그 시간 내내 남자들이 끊임없이 나가고 들어왔고 여자들은 입구 틈새로 계속 살폈다.

매우 큰 쟁반에 조리된 쌀이 들어왔고 그 뒤를 이어 튀긴 생선과 수프가 들어왔다. 수프 그릇이 돌고 모두가 돌아가며 수프를 꿀꺽꿀꺽 마셨다. 그런 다음 수프를 밥 위에 붓고, 발효한 물소 우유를 담은 그릇이 돌려졌다.

우리 일행과 마을에서 높은 지위의 사람들 몇 명이 갈대 매트에 책상다리를 하고 앉아 먼저 먹었다. 사람들은 모든 것을 오른손으로 먹었다. 손바닥으로 밥을 주무르며 작은 덩어리를 만들어 엄지손가락으로 쳐서 우아하게 입으로 집어넣었다. 사람들이 내가 서툴게 밥 덩어리를 입에 넣는 모습을 몰래 지켜보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매번 민망할 정도의 밥알이 매트에 떨어졌다. 몇 명은 웃기도 했지만 대부분 먹느라 정신이 없었다.

친절한 주인은 앉아서 같이 먹지 않고 언제라도 도움을 줄 수 있도록 우리를 지켜보며 서 있었다. 내가 어려움을 겪고 있는 모습을 보고 숟가락을 가져오라고 시켰지만, 내가 거절하자 모두가 기뻐했다. 이브라힘은 “어느새 우리처럼 될 겁니다”라고 말하며 나를 달래주었다.

우린 식사를 끝내고 밖으로 나가 손을 씻었다. 한 사람씩 비누 조각을 나눠주고 단지에 담긴 물을 따라 주었다. mudhif에선 음식 주위에 우리가 앉았던 자리를 여성들과 아이들 및 마단족의 사회적 단계에서 아래에 속한 사람들이 차지했다. 순식간에 산처럼 쌓여있던 음식이 사라졌다.

모든 식사는 쌀밥 위에 다른 음식이 얹힌 채로 나왔다. 보통은 다른 음식과 함께 조리한 채소가 있었다. 약간의 향신료를 사용했는데 음식은 언제나 맛있어 보였다. 그것은 내가 항상 배가 고팠기 때문이었을 수도 있다.

내가 배가 고팠던 가장 큰 이유는 높은 사람이 식사를 끝내면(나의 두 배 속도로) 바로 일어나고 다른 사람들도 모두 따라 일어났다. 일반적인 관행이었지만 나는 언제나 반 정도밖에 배가 안 찼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단족과 함께 있는 동안 그 어느 때보다도 내가 건강하다고 느꼈다. 영국 탐험가 세시저(Thesiger)나 다른 사람들의 말과는 달리 마단족 중에서도 질병이 있는 사람을 보지 못했다. 물론 활동적인 생활과 함께 생선, 쌀, 채소 그리고 가끔 먹는 고기는 건강에 좋은 식단이다. 하지만 남자들은 담배를 많이 피웠다.

점심 식사 후엔 언제나 그렇듯이 달콤한 차와 담배 그리고 이야기가 뒤따랐다. 담배를 안 피우는 사람이라도 이런 상황에서는 커피나 차를 마시는 것과 같이 함께 피우는 것이 예의였다.

대화에서 개인적인 이야기는 거의 하지 않았지만, 주인은 우리에게서 여행의 목적을 캐묻고는 우리의 순수한 의도를 알고 안심했다. 그리고 늪지에선 소문이 배보다 훨씬 빨리 움직였다.

어두워지기 한두 시간 전에 우리는 떠날 채비를 했다. 빨리 떠나고 싶어서가 아니라 마을 우두머리가 도산하는 것을 막기 위해서였다. 그는 이미 우리에게 많은 것을 제공했지만, 우리가 머무른다면 관습에 따라 계속 그렇게 해야 했다. 우리는 그가 우리 앞에 놓아둔 담배를 그대로 놔두고 감사의 표시로 노르웨이 정어리 통조림 몇 개를 놓고 왔다.

우리가 그 작은 메소포타미아의 베니스를 떠날 때 정말 마을 사람 모두가 나와 손을 흔들어주었다. 마음이 따뜻해지는 경험이었다.

우리는 매일 갈대숲, 수로, 늪, 호수 등 사이를 지나다녔다. 거주지 주변엔 사람들이 나이와 상관없이 갈대를 모으고, 먹을 수 있는 식물을 채취하며 창이나 그물로 물고기를 잡는 일로 항상 분주하게 움직였다.

육지 가장자리에 사는 사람들은 갈대로 만든 매트와 물고기를 다른 물건과 바꾸거나 팔았다. 배를 만들고 틈새를 막기 위한 나무와 역청, 설탕, 소금, 탄약, 담배, 직물 등 꼭 필요한 물품을 외부에서 얻는 유일한 수단이었다.

사람들이 없는 곳엔 오리, 미국 펠리컨, 왜가리 그리고 내가 모르는 많은 새들이 있었다. 물소 떼는 돌보는 사람 없이 천천히 움직이거나 물이 깊은 곳에선 평화롭게 수영하며 돌아다녔다.

이곳저곳을 다니며 관찰한 결과 마단족은 "바다였던 땅"에서 살고, 베두인족은 모래였던 땅에 살지만, 두 집단엔 비슷한 점이 많았다. 사우디아라비아의 베두인족과 지낸 경험이 있는데, 매일 마단족의 생활 방식에서 베두인족과 비슷한 점을 발견할 수 있었다.

하루는 Al-Chiddee라는 마을에 도착했다. 개들이 짖으며 우리의 도착을 알렸다. 이곳엔 모든 집에 감시견이 있었으며 하루 중 언제나, 특히 어두워진 후에도 경계를 늦추지 않았다. 가족 중 한 명이 개를 진정시키지 않은 상태에서 집에 들어가거나 아주 튼튼한 막대기 없이 들어가는 것은 현명한 일이 아니었다.

우리 안내자가 그 마을의 우두머리와 친척이어서 이번엔 마을 밖에서 기다리지 않고 곧장 그의 집으로 갔다. 나이가 든 쾌활한 우두머리는 어떻게 우리가 온다는 것을 알고 모든 준비를 해놓았다. 그 지역의 bisht(망토)와 ghutrah(두건) 차림인 그와 가족 전체가 밖에 서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이곳은 다른 아랍 세계와 비교해 여성의 행동이 훨씬 자유로웠지만, 이 마을에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가족 중 여성들과 악수를 했다. 유쾌한 우두머리의 아내는 심지어 우리가 또 다른 만찬을 즐기는 동안 mudhif에서 잠깐 함께 앉아 있기도 했다. 이번 만찬의 주요리는 치킨이었다. 보통은 둘 중 하나였으며 가끔 양고기가 나왔다.

이 마을에선 며칠을 머물도록 초대를 받았기 때문에 우두머리의 가족이 우리 배에서 모든 것을 꺼내 장비와 저장품을 모두 mudhif에 쌓아 놓았다. 우리가 그의 손님으로 그곳에 있는 동안 가능성은 낮지만 물건을 도둑맞지 않기 위해서라고 그가 말해주었다.

난 늪지에서 곤란한 문제가 무엇인지 알게 되었다. 바로 수면 부족과 사생활이 보장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새벽에 일어나 사진을 찍어야 했기 때문에 일찍 자야 했지만 늪지에서의 하루는 매우 길었다.

일찍 잔다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특별한 손님을 맞이하여 마을 사람들 모두 잠자러 집으로 갈 생각을 하지 않았다. 잠은 우리가 떠난 후에 잘 수 있었다. 결국 새벽 두 세시까지 앉아서 이야기하며 축제 분위기가 이어졌고 난 침낭에 앉아 잠이 들었다.

새벽 5시에 해가 뜨고 난 일어났다. 주인은 아침 식사를 준비하고 있었다. 카메라 장비를 챙겨 출입문을 빠져나왔다. 이제는 우호적인 감시견이 내 뒤를 따라다녔다. 처음으로 다른 사람들이 늪지대의 "불멸성"에 관해 했던 말이 이해가 됐다. 물을 뒤덮은 아침 안개에서 어두운 분홍빛이 보였다.

아무것도 움직이지 않았다. 멀리서 개구리 몇 마리가 우는 소리 말고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물에 갈대 오두막집과 섬들이 선명하게 비쳤다. 그 뒤로 키가 큰 갈대가 어렴풋이 보이고 바로 위에선 펠리컨 무리가 어디론가 날아가고 있었다.

그러고 나서 작게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갈대 속에서 날카롭고 우아한 곡선의 뱃머리가 물을 가로지르며 고기잡이 배가 나타났다. 어부는 조용히 내게 인사를 건넸고 나도 인사했다. 그래도 마법은 풀리지 않았다. 물소 떼가 움직이기 시작하고 일부는 조용히 물속으로 들어갔다. 몇몇 갈대 오두막에서 연기가 피어오르기 시작했고 몇 명이 조용히 말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마치 무아지경에 빠진 듯한 상태에서 카메라를 작동했다.

매일 내 생활엔 일정한 방식이 굳혀졌다. 아침 식사 전에 그리고 가끔은 아침 후에 이브라힘과 나는 배를 빌려 단둘이 나가 사진을 찍고 사람들과 이야기하며 늪지에서의 생활을 관찰했다. 그동안 군인과 비밀경찰은 집에서 온종일 자고 먹고 차와 커피를 마시며 담배를 피웠다. 그들은 마치 없는 존재 같아서 내 일에는 도움이 되었다.

태양이 높이 뜨고 사진 찍기에 너무 밝으면 우린 배에 웅크리고 앉아 다음 장소로 이동하며 먹이로 삼을 오리를 사냥했다. 오리는 많았고 오리를 잡으면 주인에게 선물도 되고 식단의 다양성을 위해서도 좋았다.

늪지대에서 만난 사람들은 모두 유머감각이 있었다. 저녁에 다 같이 둘러앉아 내가 자신들의 방식을 따라 하거나 아랍어를 시도할 때마다 재미있어했다. 어떤 남자들은 몇 가지 무례한 말을 가르쳐주기도 했다. 매번 내가 그 말을 하는 즉시 어색한 분위기가 사라졌다. 언제나 사람들의 마음을 쉽게 열리게 했다.

하루는 두 마을 간에 피비린내 나는 싸움으로도 번질 가능성이 있는 가족의 문제에 휘말릴 뻔한 적이 있다. 아닐 수도 있지만, 알 길이 없다.

늪지대 중앙에 있는 작은 마을에 도착하자마자 무엇인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대접받은 커피와 차도 겨우 격식을 갖춘 정도였다. 배들은 빠르게 오갔으며 외부인인 나도 느낄 수 있을 정도로 긴장감이 감돌고 있었다.

우리가 불안하게 조촐한 식사를 하는 동안 이브라힘은 그 마을의 한 처녀가 근처의 작은 마을 청년과 전날 밤에 계획대로 혼인했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그런데 알고 보니 그 처녀는 자기 마을에서 어린 시절부터 알고 지낸 다른 청년을 사랑했고 그와 결혼하길 원했지만, 그녀의 부모는 다른 마을의 청년과 결혼해야 한다며 굽히지 않았다.

이브라힘은 그 처녀가 결혼식은 치렀지만 신랑에게서 도망쳐 남자친구와 달아났다는 사실도 알아냈다.

이것은 그 가족의 체면에 심각한 손상을 주는 일이었다. 그녀가 돌아오지 않으면 보상으로 여러 마리의 물소와 돈 그리고 다른 것들을 줘야 했다. 두 마을의 위원회가 만나서 문제를 논의할 예정이었지만, 한편으로는 총을 장전하고 있었다. 이곳 "낙원"에서도 문제는 일어났다.

우리는 빨리 떠나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 그렇게 했다. 이 문제가 어떻게 해결되었는지는 알 수 없었다.

Marsh 사람들에게 가장 큰 재앙은 늪지를 돌아다니는 수천 마리의 거대한 야생 멧돼지였다. 포악한 짐승으로 자극받으면, 때로는 자극 없이도 사람들을 공격했다. 늪지에서의 부상과 사망 중 1/3 정도가 멧돼지로 인한 것이며, 이슬람교도인 이곳의 아랍인들은 멧돼지를 잡아먹을 수도 없다.

마단족에겐 멧돼지가 몇 마리라도 죽는 것만큼 기쁜 일이 없었기 때문에 우리는 매일 멧돼지를 찾았다. 그리고 난 죽이진 못하더라도 직접 보고 싶었다. 멧돼지의 흔적도 보이고 밤엔 울음소리도 들렸지만, 늪지대에서의 마지막 밤이 되어서야 멧돼지를 볼 수 있었다.

우린 작은 배를 타고 거친 갈대숲 사이로 전날 멧돼지들이 목격된 정소를 온종일 다녔다. 아무것도 찾지 못한 우리는 해가 질 무렵에 배로 돌아가려 했다.

내 왼쪽으로 얕게 물에 잠긴 구역의 맨 끝에 물소가 움직이는 것을 보고 이브라힘에게 알려주었다. 그는 깜짝 놀라며 굳은 채로 "저건 물소가 아니라 멧돼지"라고 말했다. 총 6마리 중 3마리는 너무 커서 어두운 곳에선 물소로 착각할 정도였다.

이브라힘은 총을 준비하고 그날 우리와 동행했던 그 지역의 마단인도 총을 준비했다. 난 카메라 두 대와 300mm 렌즈를 붙잡았다.

“멧돼지들이 공격할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라고 이브라힘이 속삭이며 총을 위로 젖혔다. 난 망원렌즈를 이브라힘의 어깨에 기대고 흉한 모양의 어금니에서 눈을 떼지 않으며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이미 너무 어두워졌기 때문에 방어의 목적이 아니라면 사진을 찍는 것이 매우 위험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어차피 사진 찍기에도 너무 어두웠다.

움직이지 않으면서 기다리는 것 말고는 다른 방법이 없었다. 그러던 중 멧돼지 한 마리가 킁킁대더니 모두 뒤돌아서 갈대 속으로 빠르게 사라졌다.

우리 모두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난 내가 벌벌 떨고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됐다. 그날 공포에 떨었던 순간은 영원히 내 마음에 남아있다. 그리고 늪지에서 진정한 낙원을 찾았다고 생각했던 순간도 있었지만, 그 일로 낙원은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지금은 사라진 고대의 생활방식을 체험할 수 있었던 것은 대단한 영광이었다. 그리고 마단족의 후한 접대와 친절함은 절대 잊을 수 없다.

노르웨이 출신 프리랜서 작가이자 사진가인 Tor Eigeland(www.toreigeland.com)는 평생 세계 곳곳을 돌아다니며 수십 년째 Saudi Aramco World 및 다른 간행물에 기고해오고 있다. 현재 프랑스에 거주하며 포토저널리즘에서 책으로 분야를 옮기는 중이며 All the Lands Were Sea가 그 첫 작품이지만, 카메라를 완전히 포기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말한다.


 

This article appeared on page 24 of the print edition of Saudi Aramco Worl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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