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양 지도를 보면
항상 눈길을 끄는 곳이 하나 있다. 흑해(BLACK SEA)와 마르마라해(SEA OF MARMARA)를 연결하는 좁은 수로이자 이스탄불 시를 반으로 갈라놓는 보스포러스 해협은 세계의 여러 주요 해협이나 운하 중에서도 독보적인 존재이다. 폭이 조금 더 넓은 쌍둥이 격인 다르다넬스(DARDANELLES) 해협과 함께 보스포러스는 동양과 서양을 나누는 것으로 유명한데, 다른 운하나 해협은, 예를 들자면 수에즈(SUEZ)와 파나마(PANAMA) 운하, 말라카(MALACCA) 및 마젤란(MAGELLAN) 해협 등—은 다른 지역을 연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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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üngen Maritime and Trading 회사의 소유주인 Mehmet Güngen은 그의 가족회사가 어떻게 당밀 운반에서 석유 운반으로 발전하게 되었는지를 설명한다. |
대륙 사이의 장벽으로서, 또한 유럽과 아시아를 묶는 물길로서의 역할로 인해 보스포러스는 역사나 전설에서 두드러진 면모를 보였다. 고대 그리스인들은 흑해의 식민지로 가기 위해 해협을 항해하였고, 페르시아의 왕 Darius는 기원전 5세기에 해협을 건너기 위해 부교를 건설하였고, 기원후 1451년에 위대한 정복자 Mehmet는 콘스탄티노플(Constantinople)을 압박하기 위해 해협의 유럽 쪽 둑에 요새를 구축하였고, 냉전시대에는 터키의 보스포러스 장악이 소련의 "목을 조르고 있다"라고 Joseph Stalin은 말한 적이 있으며, 오늘날 이 해협은 석유 무역에서 세계적 수송지로서 핵심적인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Rhodes의 Apollonius가 황금 양털을 찾아 떠나는 Jason의 모험을 그린 25세기 전의 서사시 Argonautica에서부터, 상업 목적의 모든 국적선의 자유로운 해협 통행을 보장하는 1936년의 Montreux 조약 및 그 수많은 개정에 이르기까지, 보스포러스를 흐르는 물만큼이나 많은 잉크도 따라 흘렀다.
러시아 노보로시야스크(Novorossiysk)에서 프랑스 르아브르(Le Havre)까지 석유를 운반하기 위하여 빈 배로 가는 동안 해협을 남쪽에서 북쪽으로 통과하는 M/T (유조선: Motor Tanker) Ottoman Nobility호의 브릿지 데크에 손님으로 초대받는 것은 흔치 않은 기회이었다. Nobility는 수에즈 운하를 통행할 수 있는 최대 크기인 수에즈맥스급으로 터키의 가족 회사가 소유하고 있는데, 처음에는 사탕무우 당밀을 운반하였다. 형제들 중의 한 명인 Mehmet Güngen은 "우리 자신에게 물어 보았습니다. 한번에 30,000톤의 당밀을 취급할 수 있는데, 5배 정도의 석유를 취급하지 못할 이유가 있을까? 어쨌든 액체는 액체인데"라고 말했습니다.
과중한 교통량과 7개의 주요 굴곡—일부는 운항하는 선박의 길이보다 겨우 2배 정도 넓다—으로 인해 보스포러스를 항해하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지는 잘 알려져 있다. 터키 정부는 국가 창설 100주년이 되는 2023년 완공을 목표로 유럽 쪽에 평행을 이루는 제2운하 계획을 발표하였는데, 이에 대해 처음 계획한 바에 따르면, 운하는 너무 좁고 얕아서 운항하는 배들이 이동하거나 운하를 빠져나올 수가 없기 때문에 수상 자신이 "황당한 생각"이라고 말하였음에도 불구하고 터무니 없는 계획으로만 보이지는 않는다. 운하 예정지로 지정된 곳은 언덕과 미개척지가 많은 지형으로서 중간 중간에 있는 호수를 이용할 수 있었던 수에즈나 파나마 운하와는 달리 많은 굴착이 요구되는 지형이다.
그렇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보스포러스의 유서 깊은 해안선과 현재 하루에 140대의 화물선이 오가는 혼잡한 항로를 보호하기 위해 무언가를 해야만 한다는 데 동의하는 것으로 보인다. 흑해의 항구로부터 석유의 선적이 증가함에 따라, 특히 유조선의 교통량이 증가하고 있다. 1979년, 해협의 남쪽 입구에서 발생한 그리스 화물선과 루마니아 유조선 Independenta의 충돌에 따른 폭발이 발생하여 육지 건물의 유리를 깨뜨리고 94,000톤의 원유를 쏟아내어 해안선을 따라 수주일 동안이나 불탔다. 110만 배럴을 적재한 수에즈맥스급—Independenta의 절반 크기— 유조선이 운하 가운데에서 폭발한 것을 가정한 최근 컴퓨터 시뮬레이션은 양쪽 해변을 따라 1.5km가 완전히 황폐화되는 것을 보여 준다.
Nobility호는 올리브 포인트(Olive Point) 즉 제이틴 부르누(Zeytin Burnu) 앞의 마르마라해에 줄을 서서 정박하였다. 하루를 기다린 끝에 Levent Toker 선장의 지휘하에 일요일 오후 통행허가를 받았다. 감독관으로서 운영 감독관인 Tuğrul Vural 선장이 따라 왔다. 도선사가 방문자들을 배로 안내하였다. 선체의 건현을 따라—배는 비어 있었고 높이 떠 있었다—16m 길이의 가파르게 경사진 통로가 있었다. 주 갑판에 오르고 조타실로 가기 위해 4층을 더 오르며, 우리가 지나갈 두 개의 선교에 스치지나 않을까 걱정되었다. 그러나, 그것은 괜한 걱정이었다. 다리는 해수면 위로 64m 높이로 솟아올라 있고, 우리 배는 홀수선에서 겨우 42m 높이일 뿐이었다.
1800년, Jean-Baptiste Lechevalier는 보스포러스의 뚜렷한 7개 굽이를 정확하게 구분하였는데, 갑작스런 비로 인해 염도가 변할 때마다 그 해수 표면의 색이 변하는 것을 관찰하여 각 굽이에는 서로 다른 해류가 흐른다는 것을 지적하였다.
Toker 선장은 1453 콘스탄티노플 정복의 일환으로 해협의 중간에 건설된 초기 오트만(Ottoman) 요새인 Rumeli Hisarı 바로 앞의 보스포러스 해에서 수영하며 민어도 잡으며 자랐다. Vural 선장은, 27 동안 다양한 배를 운항하며 세상의 중요한 모든 해협, 운하 그리고 강까지도 운항하였고 보스포러스를 그의 앞마당처럼 잘 알고 있다. 일요일 점심에 어김없이 제공되는 콩을 곁들인 밥이 제공되는 간단한 식사는 Toker 선장의 또 다른 일주일 일정을 마감한다는 의미이다. 그는 바다에서 3개월을 근무한 후에 집에서 1개월을 보낸다.
2세기 그리스 지리학자인 비잔티움(Byzantium)의 Dionysius는 최초로 보스포러스 지형도를 상세하게 작성하였는데, 이것은 이스탄불(Istanbul) 역사가인 John Freely가 묘사했던 "하나의 열쇠로 두 세계와 두 바다를 열고 닫을 수 있으므로 모든 해협을 능가하는 해협"이라는 멋진 문구를 떠올리게 한다. Freely 자신은 보스포러스를 "꿈의 나라에 있는 시간의 강"이라고 불렀으며 6세기 비잔틴(Byzantine) 황제 Justinian 1세 통치 시대의 사관이었던 Procopius가 "물의 화관"이라고 불렀던 것을 인용하였다.
이물에서 고물까지 269m 길이의 M/T Ottoman Nobility호는 비록 이곳의 물 깊이가 25m에 불과하지만 200m 길이의 닻줄로 정박한 채로 바람에 흔들리고 있다. 15톤의 닻에 더해 85톤의 닻줄은 쉽게 25,000톤 배 위로 감아 올려져 갑판장의 창고로 직행하여, 거기서 사람보다 더 큰 단정하게 똬리를 튼 로프 옆에 얼크러진다. 갑판원이 가장 귀 기울여 듣는 것은 선교에서 들려 오는 명령어—funda! ("닻 내려!") 그리고 vira!("닻 올려!")—는 귀항 또는 출항을 나타내며, 많은 터키 항해 명령어가 그렇듯이, 베네치아인과 제노바인의 해상 무역 덕분에 이탈리아어에서 온 것이다. 이 배에서는 두 명령어에 bismillah("신의 이름으로")가 뒤따른다.
보스포러스는 모든 방향에서 불어오는 바람으로 유명하다. Freely는 바람의 이름을 일일이 기억하고 있는 늙은 선장과 üsküdar에서 얘기를 나누었다. yildiz는 북에서 부는 별 바람, 2월의 keşişleme는 Uludağ산에서 남동쪽으로 습기를 가져다 주는 바람, karayel은 북동쪽에서 불어오는 초겨울의 검은 바람, 그리스 북풍의 신 보레아스의 이름을 본뜬 poyraz, 남풍의 신 노토스의 이름은 본뜬 lodos, 그리고 melteme는 북서풍이다. 선장은 또한 계절의 변화를 미리 말해주는 폭풍의 이름을 기억한다. hüzün fırtınası는 봄의 기분 좋은 폭풍, karakuş fırtınası는 여름의 지빠귀 폭풍, 그리고 balık fırtınası는 가을의 물고기 폭풍으로 비잔틴 제국의 일부 동전에서 볼 수 있는 비잔틴의 상징인 참치가 오는 계절을 알리는 선구자이다.
오늘의 변덕스런 남풍과 흑해의 차갑고 염도가 낮은 해수로 인해 지속적으로 북쪽으로 흐르는 표면 해류를 맞아 Nobility호는 그 최고 속도 15노트의 반에 못 미치는 속도로 천천히 보스포러스의 남쪽 입구를 향하여 움직이기 시작한다. 아시아 쪽에 있는 고대 칼케돈(Chalcedon)으로 불렸던 카디쾨이(Kadiköy)를 향하며 해협을 통과하는 90분간 Toker 선장을 도울 도선사를 태웠다. 비록 Toker는 혼자서도 능숙하게 해협을 항해할 수도 있지만, 보험 규정은 전문 도선사를 선교에 태울 것을 규정하며 터키 정부는 엔진이나 방향타 고장으로 긴급 조치가 요구될 경우 유조선의 뱃머리를 끌어 항구로 이동할 수 있도록 예인선을 규정하고 있다.
보스포러스는 그물을 너무 깊게 칠 경우 남쪽으로 향하는 표면해류에 맞서 어선을 북쪽으로 이끄는 것으로 알려진 독특한 북향의 심층해류로 인해 특히 복잡한 수로이다. 그러나 북쪽으로 부는 강한 바람은 표면해류를 완전히 반대로 바꾸고, 각 굽이에서 소용돌이를 일으키며 해협의 교차 여울목과 넓은 만에서 교차해류를 발생시킬 수도 있다. Apollonius는 그것을 "소용돌이치는 보스포러스"라고 했고, 16세기 플랑망 작가이자 Turkish Letters의 저자인 Ogier Ghiselin de Busbecq 작가는 "해각에 부딪치며... 하루의 여행에서 여러 소용돌이와 굽이를 돌아 콘스탄티노플에 다다른다"라고 썼는데, "마르마라로 넘칠 듯이 달려드는" 것이라고 정확하게 묘사하였다.
프랑스인 Jean-Baptiste Lechevalier는 일찍이 1800년에 발행된 그의 저서Voyage de la Propontide et du Pont-Euxin에서 이러한 해류를 가장 정밀하게 묘사하는 글을 남겼다. 그는 "이와 비교할 수 있는 해협은 이세상에 없다.—이것은 해안선의 아름다움, 정박할 때의 안전함, 그리고 항해자의 눈에 비춰지는 그림 같은 물체의 무한한 다양성에서 다른 모든 해협을 초월한다"라고 적었다. 그는 보스포러스의 각각 서로 다른 해류가 흐르는 뚜렷한 7개 굽이를 정확하게 구분하였고, 갑자기 비가 내려 염도가 변할 때마다 그 해수 표면의 색이 변하는 것을 관찰하였다.
부분적으로는 이러한 해류의 영향으로 인해 한번 해로에 들어선 배는 쉽게 멈출 수가 없었다. 작은 보트가 본선에 나란히 다가와 속도를 맞추고 항해사가 통로에 매달려 있는 사다리의 가장 하단을 잡았다. 그는 16미터의 건현을 기어올라 주 갑판에 도달했다.
승무원이 선교에 있는 도선사 Ahmet Turna와 악수로 인사하였고, Turna는 해협을 건너는 통근 여객선을 주시하며 그의 일을 시작하였다. 교통은 특히 아시아 쪽의 카디쾨이와 위스쾨다르(üsküdar) 사이에서 그리고 유럽 쪽의 에미노뉴(Eminönü)와 카라쾨이(Karaköy) 사이에서 혼잡하였다. Turna와 승무원들은 작은 인원이었지만 진지하게 협조하였다. 도선사와 선장 외에 조타수도 운전대 앞에 서 있었고, 매 분마다 항해사는 뱃머리가 향하는 방향을 항해일지에 기록하였고 낡은 종이 지도를 살펴보며 스크린에서 빛나는 전자 지도를 재확인하면서 평행자와 컴퍼스를 사용하여 꽤 옛날 방식으로 진로를 그리고 있었다.
마찬가지로 중복되지만 안전제일 정신에 입각하여, 허리 높이의 자석 나침반이 전자 나침반의 고장에 대비하여 선교 외부의 좌우익에 준비되어 있었다. "현대식 배를 움직이는 것은 배에서 만들어 내는 17,000 마력의 기계적 동력과 —증기, 전기 및 수력이 아니라 —전자 장비"라고 Toker는 약간의 과장된 어조로 말하였다.
전자 지도는 해수 깊이 및 해류 그리고 계획한 항로와 실제 항로뿐만 아니라 GPS 송수신기로 다른 대형 선박의 위치에 관해서도 풍부한 정보를 보여 준다. 지도 정보는 우리 배의 후방에 Captain Nihat 선장의 이름이 아닌 배의 이름—이 있다는 것을 나타내고 있지만 오가는 많은 유람선은 마치 수많은 오리나 거위가 떠다니는 것처럼 이름이 없거나 종종 눈에 띄지 않는다. 놀랍게도 선교는 뱃머리의 해상에 사각지대를 가지고 있는데, 화물이 적재되지 않아 높이가 상승하면 대략 0.5km의 전방까지 사각지대가 늘어나며, 이것은 필연적이지는 않더라도 부주의한 요트선수나 낚시꾼의 어깨를 근접하게 충돌할 수 있는 원인을 제공한다.
놀랍게도 선교는 뱃머리의 해상에 사각지대를 가지고 있는데, 화물이 적재되지 않아 높이가 상승하면 대략 0.5km의 전방까지 사각지대가 늘어난다.
보스포러스에서 50년간 배들을 위협했다는 30 큐빗 길이의 향유 고래 Porphyrio에 관한 Procopius의 이야기는 거의 꾸민 이야기일 것이며, 해협을 위아래 또는 가로질러 여행하는 수백의 통근 여객선은 자체적으로 주의 깊은 전문 항해사가 탑승하고 있을 테지만 Ufuk Doğan과 같은 어부는 이러한 물길의 교통 통제에 명백한 위험을 추가시킨다.
Ufuk은 종종 그의 작은 보트로 새벽에 갈라타(Galata) 다리 아래 카라쾨이 부두 지구에서 출발하여 류페르(lüfer) 또는 블루피시를 잡으러 운하 중간으로 간다. 그의 낚싯줄에 바늘처럼 생긴 자르가나를 미끼로 물리면서, 머리 위로 다가오는 거대한 선체가 아닌 그의 손에 있는 작은 물고기에 정신을 집중한다. "우리 같은 어부는 유조선을 좋아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엔진 소음과 더러운 배출수가 모든 것을 망치기 때문이다. 나의 아버지 Alaatin은 훌륭한 어부로서 보스포러스의 모두에게 잘 알려져 있고, 그가 그랬던 것처럼 나도 생계를 이어갈 수 있길 바라면서 이 보트를 물려 주었다. 그러나 그것은 더 이상 가능하지 않다"라고 그가 말한다.
Nobility호가 거쳐야 할 7개 방향전환 중 첫 번째는 우현으로—오른쪽—55도이며 이 위치는 크즈 쿨레시(Kız Kulesi) 또는 처녀의 탑(Maiden’s Tower)에 있으며, 카디쾨이(Kadiköy)의 바로 북쪽 아시아 쪽에 있는 작은 섬이다. 비록 그리스 신화의 인물인 Leander가 그의 연인인 Hero를 만나기 위해 헤엄쳐 건넌 해협은 보스포러스가 아닌 다르다넬스 해협이지만 이곳은 종종 레안더스 타워(Leander’s Tower)라고 불려진다. 고대 그리스어로 "암소 여울"의 뜻을 지닌 보스포러스는 그 이름이 Zeus 신과 요정 Io의 신화에서 기원한다. Zeus는 Io를 유혹하고 나서 그의 아내 Hera의 노여움으로부터 그녀를 보호하기 위해 그녀를 암소로 둔갑시키지만 Hera는 속지 않았다. 복수로서 Hera는 암소를 물어뜯어 미치게 하는 쇠파리를 보냈는데, 결국 암소는 헤엄쳐 아시아로 도망쳤다.
도선사 Turna는 레이더, 나침반, 수심, 방향키 각도 및 회전 비율을 보여주는 머리 위의 전자 표시기에 거의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대신 그의 눈은 항상 전방을 향했고, 언덕 위 그리고 양쪽 해안의 물가에서 펄럭이는 도처에 있는 터키 국기, 파도의 움직임과 높이, 그리고 Nobility호보다도 해류나 바람에 더 영향을 많이 받는 작은 배들의 움직임을 주시하고 있었다. "출발하기 전에 단순히 그 길을 정해 놓는 것이 아니라 매번 그것을 느껴야 합니다. 단 하루도 같은 날은 없죠. 오늘은 어떤 배가 문제를 일으킬까? 오늘은 어떤 변덕스런 바람이 항로를 방해할까? 선교에 오르기 전에는 이러한 모든 질문에 대답할 수 없습니다."
첸겔쾨이(Çengelköy)에서의 두 번째 방향 전환은 좌현(왼쪽)으로 30도였다. 세 번의 긴 경적을 울려 길을 예측할 수 없는 모터 요트와 돛단배들을 앞길에서 비키도록 하였다. 주말에 이들은 종종 아마추어 속도 광들이 운전을 한다. 도선사는 일사불란하게 조타수에게 지시했고, 조타수는 그의 지시를 차분하게 복창하며 방향전환 속도 및 방향타 위치"분당 14도" 또는 "방향타 0도"와 나침반 방향을 알렸다. 도선사는 각 경로마다 해류와 바람의 속도가 적힌 데이터 표를 보지만, 그는 우선 직관과 경험에, 다음으로는 맞은편에서 막 건너온 다른 배들의 도선사로부터의 정보, 그리고 마지막으로 종이에 적힌 글자에 의지하였다.
아킨티 부르누 또는 커런트 포인트의 바로 북쪽의 유럽 쪽에 있는 베벡을 지나며, 보스포러스는 최대 수심(100미터)이 되며 여기서 최대 속도로 달린다. Vural 선장은 인근의 해양 아카데미(Maritime Academy)에서 사관 생도로서 지냈던 그의 10대 시절을 회고하였는데, 그 당시 새벽 훈련에서 그는 8노트의 해류에 맞서 있는 힘을 다해 6명이 승선하는 보트의 노를 저었지만, 생도들이 아침을 먹을 수 있는 베벡의 아늑한 만으로 나아가는 데 무척이나 오래 걸렸다고 하였다. "만일 노를 놓치거나 부러뜨리면 즉시 갈라타 다리로 떠내려 가 하루 종일 굶었습니다."
파티히 술탄(Sultan Fatih) 다리 아래 아시아 쪽의 칸딜리(Kandili)와 아시얀(Aşiyan) 반대쪽 사이에서 세 번째 방향 전환을 하였는데 이곳은 보스포러스에서 가장 좁은 곳(폭이 겨우 698미터)이며, 어려운 이중 방향 전환(우현으로 45도 회전 그리고 나서 거의 동일한 각도로 좌현으로 회전)이 필요하다. 만일 회전 속도가 분당 25도를 넘으면 안정성을 잃게 되기 때문에 부드럽고 주의 깊게 회전해야 한다.
Argonautica에서, Apollonius는 보스포러스를 건너려 배를 모는 용감한 조타수에게 헌정하는 글에서, 어떻게 "솟아오르는 산과 같이 엄청난 파도가 배에 덮었는지" 그리고 어떻게 "뛰어난 조타수 Tiphys"가 방향타를 잡았는가를 이야기한다. Argo가 마침내 심벌즈처럼 그 사이를 지나는 배를 마치 부숴버리는 움직이는 한 쌍의 섬인 충돌하는 바위(Clashing Rocks)가 있는 해협의 북쪽 입구에 다가왔을 때, Jason은 비둘기를 풀어놓아 비둘기가 바위섬 사이를 안전하게 지나갈 때 배는 즉시 이를 뒤따랐다. 그러나, 두 번째 파도가 갑자기 다가왔고, "Tiphys는 노 아래에서 애쓰며 배를 달랬다." 그리고 "놀라기는 했지만 피해는 없이" Argonauts는 마침내 성공했다.
"출발하기 전에 단순히 그 길을 정해 놓는 것이 아니라 매번 그것을 느껴야 합니다"라고 Turna는 말했다. "단 하루도 같은 날은 없죠. 오늘은 어떤 배가 문제를 일으킬까? 오늘은 어떤 변덕스런 바람이 항로를 방해할까? 선교에 오르기 전에는 이러한 모든 질문에 대답할 수 없습니다."
Nobility호의 다섯 번째 방향 전환은 이스틴예의 뾰족하게 돌출한 부두 정 반대편에 있는 칸리카 포인트에서 다시 우현으로 돌고, 예니쾨이 항구로의 80도 그리고 바로 직후 타라비아 입구 건너편 아시아 쪽의 Umur 해변에서 우현으로 다시 돌아오는 것으로 전반적으로 가장 어려운 전환이다. (그 이름은 그리스어의 therapeia에서 유래된 것으로, "치유"를 의미하며 주변의 건강에 좋은 공기를 의미한다.) 이제 비잔틴 사람들이 Kledai tou Pontu, 즉 폰터스로 가는 열쇠(Keys to the Pontus)라고 불렀던 좌현쪽 곶이 나타난다. 여기서부터 흑해까지 지금까지 보지 못했던 넓은 시야가 펼쳐진다.
일을 마친 도선사 Turna는, 그가 밧줄 사다리를 타고 내려갈 때까지 8노트의 일정한 속도로 Nobility호와 나란히 가던 보트로 옮겨 탔다. 도선사를 태운 보트가 진행 방향을 바꾼 직후, 빠른 남쪽 해류가 후방에서 그 보트를 밀어 지금은 어촌이지만 예전엔 비잔틴 관세 항구였던 아나돌루 카바으(Anadolu Kavaği)의 제노바인 성을 지나면서 그 보트는 유조선 뒤로 밀려 났다.
포이라즈 부르누(Poyraz Burnu)("북풍 지점")의 건너편, 유럽 쪽의 가립체(Garipçe) ("이상한") 포인트를 더 지나간 후, 배는 공사중인 제3보스포러스 대교의 타워를 지났고 마침내 충돌하는 바위(둘 중 서쪽에 있는 것은 터키말로 öreke Taşı 또는 산파의 의자(Midwife’s Stool)라고 하는데, 지금은 안전하게 연육도로로 육지에 연결되어 있다)을 지난다. 여기서부터 노보로시스크까지 가는 데 하루 반이 걸릴 것이다.
한편, 예전에 오트만 궁전이었던 톱카피(Topkapı) 바로 아래 사라이 부르누(Sarai Burnu) 또는 팰리스 포인트(Palace Point)에서는 55세의 Yetkin Bodur가 낚시를 하고 있다. 그는 이스타브릿(istavrit) 또는 말고등어를 잡으려 했지만, 오늘은 운이 없었다. 그래도 그는 즐거이 여울목에서 잃어버린 바늘과 인조 미끼를 건져내기 위해 오리발과 잠수경을 쓴다. 오래된 컴프레서로 주입되는 공기 호스를 사용하는 옆의 잠수부는 바구니에 홍합을 가득 채웠고, 그것을 시내 여기저기를 돌아다니는 행상인에게 팔 것이다. "난 20년 동안 여기에 왔었지," Yetkin이 말했다. "이리저리 지나가는 배들을 항상 바라보며.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작고 큰 돛단배나 엔진 달린 배들을 보며. 보스포러스는 항상 변하고 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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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ouis Werner (wernerworks@msn.com)는 뉴욕(New York)에 사는 작가이자 영화제작자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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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탄불에 거주하는 보도사진가 Matthieu Paley (www.paleyphoto.com)는 파미르(Pamir), 카라코람(Karakoram) 및 힌두쿠시(Hindu Kush) 산맥의 문화와 풍경을 기록하는 전문가이다. |